9월2015

사회성과연계채권(SIB) 구현을 위한 제도화 과정


서울시에서는 지난 2014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SIB 관련 법규인 ‘서울특별시 사회성과보상사업 운영 조례’를 제정하였다. 이후 2015년 7월에 경기도에서도 SIB 관련 조례를 제정하였으며, 이와 같은 수도권 정부의 조례들은 우리나라에 SIB를 정착시키는 일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첫 번째 SIB 법규인 서울시 조례 제정 과정에 참여한 것을 바탕으로, 그 진행과정과 당시의 쟁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첫 시도의 실패

필자가 처음 서울시에 SIB를 제안했던 때는 2011년도였다. 당시 서울시의 정책 결정자들도 SIB에 대한 인식이 있었으나 첩첩 쌓여있는 시정과제에 SIB는 제대로 논의될 기회를 얻지 못하였고, 시간이 지나 2013년도가 되어 구체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하였다.

2013년에는 SIB를 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가 필요한지 알지 못한 채, 이를 현행법 하에서 성사시켜보려고 서울시의 공무원들을 접촉하면서 설득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모든 설득은 실패로 끝났다. 대부분의 담당자가 SIB는 제도적 근거가 없어 시행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부 예산은 단년(單年) 예산체계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이듬해의 예산을 전년도 하반기에 확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SIB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업 개시 후 복수의 회계연도가 지난 후에 정부가 성과보상 예산을 집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와 같은 개념이 관료들에게는 생소하고 적용이 어려운 점이었기에 제도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SIB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조례 제정 TFT의 구성

이후 2013년 12월, 서울시의회 박운기 시의원을 만나 SIB와 조례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박운기 시의원은 SIB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나에게 조례 제정 TFT(Task Force Team) 조직을 요청하였고, 2014년 1월에 TFT 구성을 완료하였다. 그 때 TFT에 참석했던 전문가들은 서울시 시의원, 시의회 전문위원, 서울시 기획조정실 및 경제진흥실 실무자들, 자본시장연구원 실장(김갑래), 그리고 본인이었다.

이로써 시의회, 시청, 외부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인 논의의 자리가 마련되어 맨바닥부터 SIB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들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SIB 구현을 위한 쟁점들

TFT가 구성되기 전부터 서울시청의 공무원들과 SIB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는 하였으나, TFT가 구성된 이후에 보다 집중적으로 다양한 방안들을 논의하고 검토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SIB 구현 방안을 고민할 때 중요하게 여겼던 사안은 ‘지속가능한 체계로서의 SIB 실현방안 구축’이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겨우 끼워 맞춘 방식의 SIB를 급조한 뒤 결국 정착되지 못하고 명맥이 끊기는 방안을 만드는 것은 피하고, 하나의 모범적인 시스템, 지속할 수 있는 SIB의 체계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TFT 구성 전후로 논의되었던 SIB 실현을 위한 방안들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1. 양해각서(MOU)

TFT 구성 전, 서울시에서 나왔던 아이디어이다. 그냥 서울시와 운영기관이 성과보상계약을 양해각서로 체결하고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새로운 법규를 만들 필요도 없고, 시에서 마음만 먹으면 바로 진행할 수 있는 점으로 인해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로 인해 이 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 양해각서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방법으로는 서울시가 향후 성과보상을 해야 할 강제성이 전혀 없어 SIB의 진행 방식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2) SIB 투자자 입장에서도 향후 서울시가 예산을 집행하겠다는 확실한 약속이 있어야 안심하고 투자를 할 수 있는데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에 기초해서 투자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3) 제도적 근거 없이 진행하는 SIB는 지속가능한 체계로서의 SIB 구현 방안과도 거리가 멀다.

2. 민간위탁

이후 외부에서 정부와 운영기관이 민간위탁 계약을 맺어 SIB를 추진하자는 안이 나왔다. 이 안에 대해서도 서울시와 나, 자본시장연구원 모두 동의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민간위탁의 경우 법적으로 기간이 3년 이내로 제한되어 있다. SIB의 사업기간은 성과가 도출될 수 있는 기간이 되어야 함에도 법적 제약에 의해 장기적 안목이 필요한 사업도 무조건 3년 이내에 종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법을 바꾸어 민간위탁 기간을 늘린다 해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어차피 법에 명시된 민간위탁 기간 이내로 사업기간을 정하는 것에는 어떠한 논리적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SIB를 하나 추진하기 위해 다른 모든 위탁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간위탁 법규를 바꾸는 것은 그야말로 교각살우가 될 수도 있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2) 민간위탁은 위탁자인 정부가 수탁자를 지휘·감독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사업의 관리에 정부가 개입하게 됨으로써 정부가 사업의 결과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SIB는 사업성과가 좋지 않으면 투자자가 정부 대신 손실을 감내하고 정부는 재무적 책임을 피할 수 있지만, 민간위탁의 경우는 정부가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뒤 실패했을 경우 책임을 회피하기가 어려워 잘못하면 투자자와의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3) 민간위탁이라고 추진 절차가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장점이 없다. 민간위탁을 하려면 사업부서의 동의와 예산담당부서의 협조, 그리고 민간위탁 동의안에 대한 의회의 의결까지 필요하다. 현재 SIB 조례도 시의회 동의가 필요하지만 위 (1), (2)번의 문제점이 있는 상태에서 시의원이나 관료들의 입장에서 절차조차 단순하지 않은 민간위탁으로 할 이유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4) 위의 이유들로 인해 민간위탁은 지속가능한 체계로서의 SIB 실현방안 구축의 방법이 될 수 없다.

3. 예산반영법

현재 서울시의 조례가 예산 반영법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조례를 만들기로 결정하기까지도 많은 시행착오와 논의가 있었지만, TFT를 구성한 뒤 조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도 처음부터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조례를 통해 구현해야하는 과제의 핵심은 다음과 같았다.

– 기존에 없던 새로운 계약의 형태를 정의
– SIB 특수성을 반영한 운영기관과의 관계를 정립
– 정부의 성과보상에 강제성 부여
– 사업수행기간에 특정한 제약이 없어야 함

이에 따라 조례 초안을 작성하고, 시의원, 시의회 전문위원, 서울시 담당부서,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심도 있게 검토하였으며, 수차례 논의와 수정 끝에 박운기 시의원의 대표발의로 2014년 3월 ‘서울특별시 사회성과보상사업 운영 조례’가 제정·공포되었다.

서울시 조례는 SIB를 활용하여 하는 공공사업을 ‘사회성과보상사업’으로 명명하고, 정부와 운영기관 간에 ‘사회성과보상계약’이라는 새로운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조례 제10조에 짧지만 중요한 내용을 담았는데 서울시의 성과보상액을 예산에 강제로 반영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사회성과보상사업’의 사업기간 제한을 조례에 담지 않음으로써 기간의 제약 없이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방정부가 조례를 만드는 것은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된다. 조례가 제정됨으로써 SIB라는 새로운 개념이 비로소 정의되고 규정되었으며, 기존에 없던 방식을 원활히 구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 공무원들도 조례가 생긴 이후에야 비로소 SIB 사업을 받아들이고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4. 사회성과보상기금

조례를 만들기에 앞서 더 좋은 방안으로 제시되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사회성과보상기금’을 조성하여 기금을 통해 정부가 SIB 성과보상을 하는 안이었다. 기금이 예산반영법보다 우수한 점은 다음과 같다.

(1) 예산반영법의 경우 특정 사업부서가 의회에 예산을 올리고 승인을 얻어야 하며, 사업마다 새로운 예산을 획득해야하는 부서의 부담이 커서 협조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점이 있다.
→ SIB에 성과보상을 하는 통합적인 사회성과보상기금이 조성되어 있다면 기금 운영 부서에서 목적사업으로서 SIB를 추진하고, 조성된 기금에서 성과보상금 지급을 보증하면 된다. 이는 실무자의 부담도 적고, 보다 효율적이다.

(2) 사회문제라는 것이 특정 부서의 업무 범위를 초월하는 복합적인 것이 많은데, 예산반영법은 단일 부서 업무에 국한된 사회문제만을 다룰 수 있다.
→ SIB를 위한 통합 기금의 경우 특정 부서 업무를 벗어난 포괄적인 과제도 수행 가능하며, 부서 간 칸막이 행정의 제약도 극복 가능하다.

(3) 현재 조례는 사업 건별로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해서 적시성 있고 유연한 사업 수행에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 기금의 경우 연간 주제별 사업계획과 예산을 의회에서 한 번에 승인받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유연하고 효율적인 사업추진이 가능하다.

위와 같은 장점들이 있기 때문에 TFT에서도 기금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금은 처음에 기금 자체를 조성하는 것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으며, 서울시나 시의회 입장에서도 당시 새로운 기금을 만드는 것이 행정적으로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사회성과보상기금의 조성은 훗날의 과제로 미루게 되었다.


서울시 SIB 조례의 개정

2014년 3월 서울시 조례가 제정된 이후 그 해 가을에 조례를 일부 보완하기 위해 다시 한 번 TFT가 구성되었다. 이번에는 서울시의회 박운기 시의원과 김현아 시의원을 중심으로 첫 TFT와 거의 동일한 전문가들이 참여하였다. 모두 조례 개정의 필요성을 이해하고서 최대한 신속하게 조례를 개정하여 사업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할 생각이었으며, 필자도 TFT의 운영과 개정안 작성을 지원하였다. 이 때 조례개정의 주요 목적은 다음 세 가지였다.

– 조례에 사용된 용어를 다듬고 수정
– 사회성과보상에 사용되는 예산의 범위를 보다 포괄적으로 변경
– SIB 사업을 심의하는 위원회를 각 사업에 전문성이 있는 사업부서에서 조직하고 운영

처음 조례를 만들 때 작성되었던 초안이 서울시의 여러 부서를 거치면서 모호해진 것들이 있었는데 이참에 이를 바로잡으려 한 것이다.

이후 시의회 상임위에서 개정안을 검토할 때 위 목적 중 용어와 예산 범위의 수정은 이루어졌으나, 위원회 운영 부분은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례에는 SIB 사업의 진행을 결정하고 운영기관을 선정하는 일을 단일한 심의위가 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를 각 사업에 대해 전문성을 지닌 심의위를 각 부서에서 조직하여 운영하도록 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였으나 성사되지 못한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훗날 다시 조례를 개정할 때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재차 해볼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1월, ‘서울특별시 사회성과보상사업 운영 조례’ 개정안이 공포됨으로써 서울시의 현 조례가 완성되었다. 물론 여전히 개선될 여지는 남아있다. 그래도 나는 SIB의 취지에 적극 공감하고 조례의 제정/개정에 참여했던 박운기 시의원, 김현아 시의원, 자본시장연구원 김갑래 박사, 시의회 및 서울시청 관계자들이 우리 사회를 위해 한 걸음 앞에서 가치 있는 일을 선도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