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기관의 어려움


얼마 전 오랫동안 SIB 사업을 준비해 온 해외 운영기관의 대표가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 여러 질문들을 하였다. 그 중 하나가 운영기관으로서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 나라에는 아직 SIB가 도입되지 않았는데, 오랜 준비 끝에 SIB 사업을 운영하게 된들 추가 사업이나 수입 측면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 않으니 앞날에 대한 고민이 생겨 시작도 하기 전에 막연한 심정이 생겼던 것 같다. 나도 운영기관으로서의 어려움을 알고 직접 겪고 있는지라 기발한 아이디어를 전해주지는 못하였다.

운영기관이라고 하면 내 주변 사람들도 우리가 얼마나 어렵거나 쉬운 일을 하는지, 어떻게 경영을 하는지 궁금해 한다. 수익모델을 물어보는 이들도 많은데 사실 대단한 게 없으며 여러모로 고단한 일들을 하고 있다. 여기서는 지금껏 팬임팩트코리아가 겪은 운영기관으로서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낮은 사업 성사 가능성

SIB 사업의 첫 단추는 일반적으로 정부에 해당되는 성과보상자를 설득하는 일이다. 처음 공무원을 만나 설득하는 일도 어렵거니와 근거제도가 없으면 조례나 법령부터 설명해야 한다. 힘들게 제도를 구축했다고 해도 사업을 기획해야 하는데 이에도 시간이 소요되며, 이후 심의위를 구성하고 의회의 의결까지 받아야 한다. 의결 후에도 수많은 절차가 남아 있는데 공공의 행정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기 어렵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 중에 담당부서의 책임자나 실무자가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여러 과정을 힘겹게 지나 어느 정도 논의가 이루어지다가도 정기 인사로 실무자가 종종 바뀌는 관료 조직 특성상 중간에 사업추진이 중단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꽤 많은 절차가 진행되다가 느닷없이 중단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많으며, 운영기관 입장에서는 아무런 열매도 없는 것이다. 오랜 시간 노력을 하여도 사업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워낙 낮고, 사라진 시간은 보상받지 못하니 허탈할 때도 많다.


긴 소요 시간

서울시 제1호 SIB 사업은 첫 제안부터 수행 개시까지 5년이 걸렸다. 그리고 서울시와 계약 체결 후 성과보상금이 지급되어 사업이 완전히 종결되기까지 추가로 4년이 더 소요되었는데 첫 사업을 마무리하기까지 거의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맨땅을 개간하여 만든 우리나라 첫 사업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오래 걸린 것이다.

첫 사업은 예외로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SIB는 사업개시까지 필요한 시간이 긴 편이다. 일반적으로 사업의 결정부터 수행개시까지 보통 2년 이상이 걸리는데, 사업 기획, 심의, 의회 의결, 운영기관 계약, 투자자 모집, 수행기관 선정, 평가기관 선정, 사업대상자 선정 등 필수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일련의 과정을 한 번만 지나고 많은 과업을 운영기관에 맡길 수 있지만, 운영기관 입장에서는 수많은 시도를 하는 중에 한 건의 성사 가능성도 낮은데다가 어렵게 성사시키더라도 소요시간이 길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매몰비용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어려운 과업

운영기관이 하는 일이 뭐냐는 질문을 들으면 할 말이 정말로 많다.

운영기관은 SIB를 알리고, 정부와 의회를 설득하고, 사업을 기획하고, 정부와 협상하고, 투자자를 모집하고, 수행기관을 선정하고,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계약을 체결하는 등 사업이 시작되기까지 많은 자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 각 과업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일인데다가 제안부터 실제로 사업이 개시되기까지 해결해야할 난제들이 산재해 있다. 또한 추진 중 무산되거나 처음부터 재시도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와 같이 하여 사업이 개시되면 관리자로서의 상시 업무가 시작되는데 전체 이해관계자 간 계약과 소통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업무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서울시 청년 실업 해소 SIB 사업 하나를 시작하기까지 운영기관은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계약만 9건을 체결하였다. 게다가 성과 중심의 정책이기 때문에 사업 결과에 대한 심적 부담감도 크며, 이해관계자들과 접촉점이 많기 때문에 늘상 고충과 논의 상태에 있어 스트레스도 많을 수밖에 없다.


적은 수입

이와 같이 다난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운영기관이 얻는 수입은 제한적이다. 보통 운영기관은 수수료를 받게 되는데 여기에는 오랫동안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 투자금 모집, 향후 사업이 종료될 때까지 사업관리에 대한 대가가 모두 포함된다. 운영기관은 사업 전부터 가장 오랜 시간 자원을 투입하고 사업을 총괄하지만 자금 할당 비중은 낮은 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수수료에 박한 인식이 있으며, 전문성과 노력, 투입된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는 명분은 외면한 채 정당한 보상을 마치 공짜 돈 받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운영기관이 기본적으로 운영을 통해 수입을 만들어 조직을 유지해야 하는데, 사업 기회 자체가 적고, 수입도 적은데 정당한 보상마저 도끼눈 뜨고 쳐다보면 안타까운 마음만 생긴다.

오죽하면 나는 직원들에게 “팬임팩트코리아가 SIB 운영을 사업 아이템으로 골라서 우리가 고생을 한다”는 말을 종종 한다.


개척의 어려움


이번 항목은 운영기관의 일반적인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운영기관인 팬임팩트코리아의 어려움이라고 이해해도 된다. 사실 오랫동안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개척자에게 친화적이지 않은 정서가 있다. 그 정서에 따르면 상대방이 새로운 것을 해도 안 되고 튀어도 안 된다.

팬임팩트코리아는 불모지에서 SIB를 시작하고 많을 일들을 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이면에는 수많은 상처와 인내가 있었다. 근거 없이 SIB와 회사를 흠집 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분도 있었고, 로비와 돈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고의적으로 사업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는 사람도 있고, 상상 못할 수준의 갑질도 있었다. 우리 자료를 그대로 표절하여 자기 것으로 공표하는 사람도 있고, 이 외에도 너무나 많은 부당한 일들이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만 가지고 장기 연재해도 될 정도이다.

어렵게 시장을 만들고, 겨우 사업 몇 건 맡게 되니 그때부터 왜 팬임팩트코리아가 여러 개의 사업을 하냐고 논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해외에서는 운영기관이 수십 건의 SIB 사업을 운영해도 이에 문제 제기 하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운영기관은 사업에 도움을 주는 전문가인데도 마치 수혜자인 것처럼 여기는 인식 자체도 문제거니와, 운영기관도 하나의 조직이라 생존하고 성장해야 하는데 운영기관은 평생 가난해야 성에 찰 것처럼 잘못된 공정의 관념을 가지고 항변하는 의식도 문제이다.

세계 첫 SIB를 운영한 영국 회사인 소셜파이낸스(Social Finance Ltd.)의 경우는 영국정부와 함께 수십 건이 넘는 큰 규모의 SIB 사업을 진행하였고, 같은 정부기관으로부터 연속으로 또는 동시에 복수의 계약을 체결한 사업도 많으며, 다수의 해외 법인을 설립하고, 영국에만 100명이 넘는 직원을 보유하는 등 세계적인 기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운영기관이 전문성을 지닐수록 사업이 올바로 진행되므로 그에 대한 수혜는 국민들이 더 많이 얻게 되는 것이다.

팬임팩트코리아에도 외국의 운영기관뿐 아니라, 연구소, 정부기관, 국제기구 등 자문을 구하고자 연락하는 해외기관들이 많이 있다. SIB 사업 기획 실적이나 고유 자료 생성량도 세계 수위권 내에 들어가며, 공익을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전문성을 쌓아왔다. 딱한 현실은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폄하하고 끌어당기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가만 두어도 척박한 한국의 토양에서 이와 같은 정서를 비료 삼아 과연 세계적인 운영기관이 나올 수 있을까?

독 안에 바닷게를 풀어놓으면 한 마리만 있을 때는 어떻게든 빠져나오지만, 여러 마리가 있을 경우에는 뒤에 있는 게가 위에 있는 게를 끌어내려 결국 모두 빠져나오지 못해 죽는다고 한다. 한국인을 풍자한 이 말은 얼마나 슬픈 은유인지 모른다.



SIB는 다양한 참여기관 간의 약속과 협력의 원칙 위에서 작동하는 체계이다. 이해관계자 중 하나만 어긋나도 올바로 사업을 진행하기 힘들 정도로 약속의 이행과 협력에 관하여 완전한 조율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하나의 SIB 사업이 그러한데 SIB를 확산하려고 하는 운영기관의 입장에서는 정말 많은 협력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처럼 운영기관의 고충을 이야기한 것은 까닭 없이 푸념한 것이 아니다. 운영기관에게 어떠한 고민이 있는지, 운영기관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이해라도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울 것 같다.

이 글로 인해 오해할 필요가 없는 사실은 팬임팩트코리아와 우리의 일을 지지해주는 이들이 많고, 그들 덕분에 인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운영기관의 어려움이라는 주제에 부합하기 위해 그러한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다.

부연하면 이와 같이 한 사업의 추진이 어렵고 운영기관도 힘들게 버텨왔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성사된 사업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수많은 시도와 시행착오, 긴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 한 건의 SIB 사업이 나오기 때문에 맡겨진 일을 조금도 소홀히 여길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 사업을 준비하고 마칠 때까지 운영기관에게는 협력을 위해 손을 잡아주는 이들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


원문출처 : http://panimpact.kr/sibmag-sib-story-202101
(이 포스팅은 필자가 SIB 매거진 2021년 1·2월호에 게재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