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024

어느 소년과의 만남


나는 가끔 내가 아는 한 소년을 만난다. 옛 생각을 하다 만날 때도 있고, 힘이 들 때 만나기도 하며, 그의 답변이 듣고 싶어 만날 때도 있다.

그리고 나의 소년 시절을 떠올리면 암담하고 암울했지만, 희망으로 빛나던 시절의 잔상들이 내 가슴을 울리곤 한다. 어른이 되어도 잊혀지지 않는 쓸쓸한 기억들이 심장을 누르면서도 밝은 꿈을 키웠던 소년 시절의 양가적인 추억은 여전히 내 마음에 묘한 감정을 실어다 준다.

내 삶에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시절 중 하나는 가진 것 없이 혼자 살며 스무 번이 넘는 이사를 하며 떠돌아다니던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해외 이민을 간 가족과 자발적으로 이별하고 한국에서 살겠다며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홀로 서게 된 나의 생활은 외롭고, 배고프고, 고단했다. 굶고, 못 자고, 너무 힘들다 보니 이러다 요절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라도 죽으면 쉽게 발견되도록 고시원 방문을 잠그지 않고 살기도 하였다.

고시원비가 없을 때는 머물 곳을 찾다 교회 창고 방에서 자거나 독서실 구석에서 생활하기도 하였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죽을 각오로 버텨보려고 하였다. 위선적인 사람들로부터 상처도 많이 받았다.

암울한 시절이지만 그때의 나는 분명 흔들림이 없었다. 가슴 속이 뜨거웠고, 견디어 내면 결국에는 고난이 걷히고 내 의지로 살아갈 수 있는 굳건한 바닥을 딛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서울의 밤하늘에서 잘 보이지도 않던 별이 보일 때, 멀리 있는 꿈도 내게 다가온 것처럼 느꼈다.

나는 별과 같이 세상을 비추는 꿈을 꾸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의 꿈이 자기가 잘 사는 것이나 개인의 야심을 실현하는 게 전부임을 알고 나면 실망스러울 때가 있다. 그들에게는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태어나 세상을 살고 있는데 내가 세상에서 잘 사는 게 태어난 이유’가 되어버린다.

이는 ‘내가 태어나 쳇바퀴 속에 있는데 쳇바퀴를 잘 돌리는 게 태어난 이유’가 되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평생을 달려도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마지막 순간에 인생이 허망해지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편안하게 잘 살거나 사욕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 꿈이라면 내가 태어난 이유를 찾기가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동물들도 본능적으로 더 배부르고 편안한 삶을 쫓으며 생식을 위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 되어 태어난 이유가 자신이 잘 되는 것뿐이라면 쳇바퀴 속의 인생이나 본능밖에 없는 인생으로 자신의 삶을 퇴영시킨다.

만약 삶의 안락함이나 사적 야망만이 꿈이라면 나는 고생의 명분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나의 꿈에서 내가 태어난 이유와 의미를 찾고 싶었고, 견디어 내고 이겨내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살다 보면 지쳐서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이러한 때에 가끔씩 내가 아는 그 소년을 만난다. 그리고 소년에게 너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물어보는데, 재미없게도 그는 힘들어도 견디라는 답변을 한다.

나는 살아보니 견디어 내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많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는 자기라면 그래도 견뎠을 거라고 대답을 한다. 원망스러울 수 있는 세상일지라도 돕는 이는 있다고도 이야기한다.

그 소년을 만나면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내 모습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과거의 기억과 삶은 현재의 내게 영향을 준다. 그 소년은 과거의 나 자신이다.

소년 시절의 나를 떠올리는 것은 힘겨웠지만 무언가를 위해 힘을 다했던 나의 모습과 동화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흔들림이 없었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불확실한 미래여도, 세상이 상처를 주어도 견디어 냈다.

과거는 바꿀 수 없는 매몰된 시간이지만 지금의 나를 위해 고통을 참던 지난날들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나의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과 같이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그 소년은 목적지를 향해 달리다 이후의 나에게 삶이라는 바통을 건내준 계주 주자와도 같다. 한 시절이 막을 내릴 때 다음 시절을 사는 나에게 살아온 모든 것을 건내주며 힘내어 달리도록 한다.

계주의 주자가 앞 주자와, 바통을 건네받을 뒷 주자에 대해 모두 책임감을 느끼는 것과 같이 사람은 자신의 과거와 미래에 모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과거의 내가 포기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나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시절을 살아갈 미래의 나에게 인생을 넘겨줄 때 후회 없이 가벼운 마음이면 좋겠다.

먼 훗날의 이야기겠지만 언젠가는 더 이상 바통을 넘겨줄 주자가 없을 때가 오게 된다. 마지막 주자가 뒤돌아볼 때 지난 주자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렸던 것을 확인한다면 조금은 행복하게 삶의 경주를 마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