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022

변하지 않는 꿈


변하는 꿈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 생일파티를 하면 아이들이 노래를 불러주며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꿈을 물어보는 순서가 있었다. 나는 첫 꿈으로 경찰관이라 답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점점 나이가 들면서 나의 꿈은 계속 변해갔다. 과학자, 야구선수와 같은 남자아이들의 공통적인 꿈을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막연히 국가와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학생 때는 세상을 위해 올바르고 정의로운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고서 그때부터 내 인터넷 아이디들을 정의를 지지한다는 뜻을 가진 ‘projustice’로 만들었다. 직업적인 꿈은 계속 변해왔지만 이 당시 삶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꿈 하나가 마음속에 이정표로 심어지게 되었다.


후회 없는 선택

처음으로 내가 할 수 있었던 나름 좋은 일은 자원입대였다. 시민권 전환이 되는 해외 영주권이 있었지만, 이를 버리고 육군장교로 3년이 넘는 기간을 복무하였다. 군복무 중 사격 소음으로 이명이 생겨 현재까지도 불면에 시달리며 고생하고 있지만 입대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제대 후 직장을 구할 때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일부러 공공기관에 들어갔고, 여러 직장들을 거친 후 2015년에 ‘팬임팩트코리아’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싶었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창업 이후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정책 수단을 도입하여 선례를 만들었지만 지자체의 실수로 우리에게 주어야 할 예산을 책정하지 않아 3~4년 간 아무 대가 없이 일을 하였던 것이다. 좋은 정책 사례로 많이 보도되고, 해외 업계와 국제기구에도 알려져 문의가 오는 등 정책은 성공하였지만 회사의 극심한 출혈과 대표로서 개인적 삶의 피폐함을 피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대가가 없다면 사업을 안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혁신적인 시스템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기여하고 싶었고, 우리나라의 사회성과보상사업은 이러한 희생 위에서 첫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나는 사업가로서 자격미달일지 몰라도 돈보다 가치 있는 일을 선택하고 끝까지 실천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수년 전에는 어느 정당으로부터 국회의원 비례대표 출마 권유를 받기도 하였다. 나를 좋게 봐준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완곡히 거절하였는데, 대표 개인이 입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고생만 하고 있던 회사를 떠나면 그동안 함께 했던 이들을 이용만 한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를 믿고 도와주었던 사람들의 기대를 깨어버릴 수가 없었다. 명예나 권력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일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며, 이 역시 후회하지 않는다.

이밖에도 단기적인 이익을 쫓아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일, 불의해 보이는 일 등은 아무리 좋은 조건과 유혹이 있어도 선택하지 않았다. 나중에 죽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변하지 않는 꿈

많은 사람들은 세상과 타협하며 아름다운 꿈을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똑같은 모양으로 살아가게 된다. 스스로 현실적이라고 위안을 삼지만 한 번뿐인 인생을 타인의 기준으로 살아가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 또한 고단한 삶 속에서 회색빛의 현실만 맞닥뜨리다 보면, 눈앞의 현실과 타협하고 때로는 그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적당히 피곤한 일 없이 돈만 벌며 살던가, 속세를 떠나 자연인이 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순간마다 나를 바로잡아 주고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은 한 때 부단하게 다짐하며 이루고자 했던 마음속 이정표와 같은 꿈이다. 힘겨워 바닥만 쳐다보며 달리다가도 어느새 그 꿈은 내 얼굴을 들어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꿈이 있는 사람의 삶에는 아쉬움이 없을 것이다. 고난도 목적지를 향한 여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힘들 때 가끔이라도 잊혀져가던 자신의 꿈과 다짐을 다시 생각하면, 여전히 이룰만한 가치가 있는 꿈이 내 안에서 빛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