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022

사회성과보상사업의 기획자와 운영기관


SIB 사업 운영기관의 기본적인 역할은 기획, 투자자 모집, 사업관리이다.

SIB 사업에서 기획이란 사회비용을 산출하고, 타당성을 검토하고, 성과기준과 성과보상 구조를 설계하고, 정부와 협의하여 사업추진 조건을 정하는 등 일련의 체계적인 준비작업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기획과 운영을 분리해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원래 SIB 사업 운영기관의 기본 과업 중 하나가 기획이다. 여기서는 기획자로서 운영기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기획자로서의 운영기관

SIB 사업의 기획자와 운영기관의 역할이 분리되기 어려운 가장 기본적인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 복잡한 SIB 사업 설계의 논리와 배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장기적인 사업운영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 기획자와 운영기관이 동일해야 가장 높은 책무성을 가지고 올바른 사업진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SIB 사업은 아주 긴 준비기간이 필요한데 특히 오랫동안 정부를 도와 사업을 만들어낸 기획자가 운영에서 배제될 경우 유능하고 헌신적인 기여자부터 이탈하는 레몬시장화가 가속화되어 SIB 시장이 발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SIB 사업 운영기관은 투자자 모집, 대외 협력 및 설득, 정확한 정보 파악, 안전한 사업관리, 올바른 사업진행 등을 위해서 복잡한 설계의 정확하고 세부적인 내용과 논리, 취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이 기획자이다.

또한 오랜 시간 사업을 준비하고 관리하는 주체가 동일해야 책무성이 강화되고, 일관적이고 효율적인 추진이 가능해진다. 기획자와 운영기관의 생각이 모순되거나, 서로 과실 책임을 떠넘긴다면 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기여한 역량 있는 기관들이 도태되는 역선택을 막아 SIB 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기획과 운영을 함께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SIB 사업은 성사되기까지 난이도가 꽤 높고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그런데 성실하고 능력 있는 단체가 힘들게 정부를 설득하고 수년 간 도움을 주었지만, 결국 자기 일이 아니라 다른 단체에게 과업을 주기 위해 하는 일이라면 결국 아무도 그와 같이 어려운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국제적인 정합성

국제기구나 해외 사회투자 전문가들은 SIB 사업 운영기관의 역할로 기획을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일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운영기관은 사업을 기획하고, 성과기준을 만들고, 협상하고, 추진단계를 구조화한다. 그리고 투자금을 모으고, 사업수행을 감독한다.”
– UNDP (2015)

“운영기관은 사업을 구조화하고, 사업 타당성을 결정한다. 운영기관은 SIB를 설계하고, 계약을 체결하고, 투자자를 모집함으로써 운영기관의 역할을 한다.”
– OECD (2016)

“운영기관은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운영방식을 개발하고, 평가기준을 수립하고, 성과보상을 정하고, 투자자를 모집하고, 사업을 감독·관리한다.”
– Adam Jagelewski 외, Centre for Impact Investing (2013)

“운영기관은 사업 기획, 투자자 확보, 수행기관 선정, 이해관계자 조정, 계약 협상, 관리를 한다.”
– Rayanne Hawkins, Urban Institute (2018)

“운영기관은 투자 및 성과보상의 조건, 사업 목표, 평가 등에 대해 협의하는 역할을 한다.”
– Princeton University (2014)

세계적인 관점으로 보더라도 SIB 사업 운영기관이 해야 하는 당연한 역할 중 하나가 기획인 것을 알 수 있다.


국내 제도

우리나라 지자체들이나 중앙정부에서는 가산점을 통해 SIB 사업 기획자의 운영기관 참여를 권장하고 있다. 이는 기획자가 운영기관이 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권장하는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서울시를 비롯하여 국내 지자체들의 사회성과보상사업 운영 조례에는 기획자가 운영기관 응모 시 가산점을 줄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 행정안전부에서 발간한 안내서에는 사회성과보상사업 운영기관 선정 시 기획자에 대한 가산점을 10점 한도로 제시하고 있다. (당시 행안부 관계자는 SIB 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해 전문성을 지닌 이들이 헌신할 수 있도록 충분한 가산점을 주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 행안부에서 전국 지자체에 배포한 사회성과보상사업 표준조례에 SIB 사업 기획자에 대한 가산점을 명시하고 있다.

사실상 기획자 가산점은 장기간 준비하고 진행되는 SIB 사업에서 운영기관의 전문성과 책무성을 극대화하고, 역량 있는 단체가 SIB 정책 발전에 더욱 기여하도록 동기부여해 주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운영기관의 정체성

위와 같이 해외에서는 운영기관의 기본적인 자격요건으로 사업 기획에 대해 명시하고 있으며, 국내 제도와 지침도 기획자의 운영기관 참여를 권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SIB가 처음 세상에 생긴 시점부터 운영기관이 기획자의 역할을 해왔고, 지금까지도 그러한 역할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명한 것을 길게 설명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만 때때로 SIB에 대한 이해 없이 운영기관은 기획자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마치 보조금 수혜단체 뽑던 습관처럼 구색을 갖춰 다양한 곳에 업무를 쪼개 주어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SIB 운영기관은 사업의 수혜자가 아니라 사업을 가장 철저히 이해해야 하는 총괄기관이다. 결코 수혜적 관점에서 운영기관을 보아서는 안되고, 최적의 사업 진행을 위해 지식과 경험을 전달해주는 전문가로 보아야 한다. SIB 사업에서 정부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민간에 과업을 나누어 주는 입장이 아니며,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가를 운영기관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운영기관은 그와 같이 되기 위해서 밑바닥부터 정부를 설득하고, 정책을 제안하고, 교육하고, 기획·설계하고, 자문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고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운영기관이 이러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온전히 사업을 만들어내고 추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헌신과 전문성이 운영기관의 정체성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