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023

사회성과보상사업 평가기관의 역할


사회성과보상사업의 평가와 평가기관의 역할에 대해 몇 가지 잘못된 생각들이 있다. 특히 결과에 따라 성과보상을 하는 SIB 사업에서 평가에 대한 잘못된 정의와 개념은 사업을 크게 왜곡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평가기관의 역할은 지표의 측정 또는 확인이다

임팩트투자 영역에서 보통 ‘평가’라고 하면 연구를 통해 각자의 방법론과 판단기준을 만들어 도출해내는 사회적 가치의 추정 또는 등급화를 일컫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SIB 사업에서의 평가는 객관적인 지표의 측정 또는 확인이다.

SIB 사업에서 정부(성과보상자)는 결과에 따라 예산을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투자자는 결과에 따라 투자금을 상환 받는다는 조건으로 참여를 한다. 운영기관도 이 결과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을 인지하고 정부, 투자자 등과 계약을 체결한다.

만약 평가기관의 주관과 판단기준에 영향을 받아 평가자의 펜 끝에서 성과가 결정된다면 사업의 수행이 아니라 평가기관을 누구로 선정하는 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위험이 발생하게 된다. 평가기관의 성향에 결과가 영향을 받는다면 애초에 결과에 따라 예산을 집행한다는 계약이 성사되기 어렵고, 투자자 모집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아무리 좋은 주제로 사업을 추진하고 참여자들이 노력한들 결국 어떤 평가기관을 선정하는 지가 결과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공공 통계를 지표로 사용하는 사업의 경우 평가기관이 없어도 되는데, 이는 SIB 사업의 평가가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SIB 사업을 기획할 때 최대한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지표를 쓰고, 평가자의 주관이 제거되도록 평가방법을 확정해야 한다. 이는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일 뿐 아니라, 투명한 사업 추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사회적 가치평가는 기획자의 사전 작업이다

SIB 사업을 준비할 때 사회비용 절감효과 또는 사회적 가치를 추정하여 이를 토대로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게 된다. SIB 사업에서 이 작업은 평가기관이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자가 하는 것이며, 사후 작업이 아니라 사전 작업으로 수행된다.

만약 사전에 사회비용이나 사회적 가치가 추정되지 않으면 사업 타당성 검토 자체가 불가능하고, 성과기준을 수립할 수도 없게 된다. 이를 토대로 투자금과 상환금이 결정되고, 정부와의 계약도 이루어진다. 가치평가의 사전 작업은 필수적이며, 사후적으로 평가기관이 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런데 ‘평가’라는 용어 때문인지 많은 이들은 평가기관이 사업 종료 후 나름의 방법론으로 가치 추정을 하고 이에 따라 사업의 성과를 결정하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 만약 그와 같다면 사업을 기획할 수 없을 뿐더러, 계약 당시에는 알 수 없는 평가기관의 관점과 판단기준에 결과가 좌우되기 때문에 계약 자체가 성사되지 못할 것이다.

여러 국제적인 문헌에서도 성과기준 또는 평가기준을 수립하는 것은 기획자인 운영기관이 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이를 토대로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는 SIB 사업의 기본적인 명제이다.

다시 말해 사회비용 추정 또는 사회적 가치의 평가는 기획자가 사전에 하고, 평가기관은 주어진 지표에 대한 사후적인 확인을 하는 것이다.

▶ 관련 글 : 사회성과보상사업의 기획자와 운영기관


SIB 전문 평가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국내 문헌을 보면 정부가 SIB 사업의 전문 평가기관을 육성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볼 때가 있다. 독립적이어야 할 평가기관을 정부가 육성하는 것도 문제거니와, 세상의 모든 지표를 자신이 측정하는 기관이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SIB 사업에서 전문 평가기관은 존재할 필요가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데, 그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SIB 사업마다 지표와 측정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문 평가기관에 대한 주장은 평가기관이 스스로 특정한 규칙에 기초한 범용적인 지표를 개발하여 사업을 평가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SIB 사업의 평가기관은 그러한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니라 지표를 측정 또는 확인하는 기관이다. SIB 사업은 사업의 주제, 대상, 목적 등에 따라 각각의 지표와 측정방법이 정해진다. 따라서 각 사업 지표에 대한 지식이 있는 독립적인 곳이면 누구나 평가기관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로, SIB 사업은 누가 측정하더라도 동일한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하며 지표를 선정하고 평가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지원해서 만든 전문 평가기관이 측정해야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설계를 하지 않기 때문에, 독립성과 지표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누구나 평가기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주제마다 달라지는 SIB 사업의 지표를 모두 측정하는 전문 평가기관은 불필요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전문 평가기관에 대한 주장 자체가 SIB를 권력화하고 관료화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오는 주장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평가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평가기관이 사업의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는 잘못된 기대로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SIB 사업에서의 평가가 객관적인 지표의 측정과 확인에 한정된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러한 주장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평가기관은 사업의 감독자가 아니다

평가기관은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지표를 확인하는 투명한 측정가여야 한다.

평가라고 하면 마치 감독자와 같은 위치에서 권한을 가지고 사업에 간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SIB 사업은 엄연히 역할이 분리된 각각의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하며, SIB 평가의 개념 내에 결코 통제자적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평가기관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평가라는 용어를 힘과 권한을 주는 것으로 오해하여 사업수행과 결과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한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평가기관이 지표나 측정방식 등에 대해 영향력을 가지고 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데, SIB 사업은 조건이나 숫자 하나만 바뀌어도 기존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계약서를 변경하고 의회 의결까지 다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일방의 의견으로 조건을 변경하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평가기관은 그러한 관점으로 사업에 참여하는 게 아니고, 객관적인 채점자의 입장을 견지하며 참여하는 것이다.


원문출처 : https://panimpact.kr/sibmag-sib-study-202212
(이 포스팅은 필자가 SIB 매거진에 게재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