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연금법과 헌정회


헌정회의 무리수

필자는 2013년 3월 20일, 국회의원 연금법으로 알려졌던 ‘대한민국헌정회 육성법’에 대한 비판 글을 네이버 블로그에 게시했었다. 당시 헌정회 육성법, 헌정회 정관 및 규정에 따르면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에 대해 국민의 세금으로 평생 동안 월 120만원의 연금이 지급되도록 되어있었다. 이후 여론의 비난에 직면하자 법을 개정하여 2014년 1월 1일부터는 전직 국회의원(18대)까지만 선별적으로 연금을 지급받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시간이 지나 2015년 7월 15일, 네이버로부터 나에게 2013년 3월에 올렸던 글이 게시중단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게시중단 요청자는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대한민국 헌정회이고, 사유는 허위정보를 게시했다는 것이다. 사라진 글을 다시 게시하려면 네이버에 이의신청을 해야하나, 요청자가 법률에 따른 추가 행동을 취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당부까지 있었다.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다. 2013년에 글을 썼던 시점에는 사실이었던 내용을 현재 기준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작성자를 허위사실 유포자로 만든 것이다.

허위사실 여부는 글을 작성했던 당시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헌정회의 생각대로면 과거에 사실이었던 글, 기사, 보고서, 책 등 모든 정보매체가 시간이 지나 사실여부가 바뀌게 되면 허위사실이 되어 글은 지우고, 기사는 정정하고, 보고서나 책은 폐기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식의 조치라면 앞으로 국민들은 부조리한 법과 제도가 있어도 자기 의견을 개진하고 비판하기 어렵게 된다. ‘국민 위에 국회의원’이라는 잘못된 의식이 머릿속에 자리잡은 것일까? 실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국회의원 연금법이 다시 개정되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비판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우리나라 상황이나 정서에 전혀 맞지 않는 악법인데다가, 나중에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폐기되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정되었는데 왜 아직도 비난하냐고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다면 국회의원 연금으로 인해 더 울분이 터지고 박탈감을 느낄 국민들의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

아래 2013년 3월 20일에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다가 2015년 7월 15일에 게시중단된 글을 옮긴다.



제목 : 반사회적인 국회의원 연금법


2010년 2월 25일, 국회의원 연금법(헌정회 육성법 개정안) 통과 (출석 191명, 찬성 187명, 반대 2명, 기권 2명).
2013년 1월 1일, 국회의원 연금법 예산안 통과 (출석 273명, 찬성 202명, 반대 41명, 기권 30명).

국회의원을 하루만 해도, 범죄를 저질러도 65세부터 평생 동안 매월 120만원의 연금 수령. (이 부분이 2014년부터 조건에 맞는 사람만 받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덧붙이면 일반 국민이 이만큼 연금을 받으려면 국민연금에 40년간 매월 342,000원씩 납부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부담도 아닌 국민의 부담으로 평생 이 돈을 받으려고 한 것이다.)


<참고사항>

대한민국 헌법
제46조 ②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대한민국헌정회 육성법
제2조의2(연로회원지원금) ①헌정회는 연로회원에 대하여 지원금(이하 “연로회원지원금”이라 한다)을 지급할 수 있다.
②연로회원지원금의 지급대상 및 지급금액 등 필요한 사항은 정관으로 정한다.

대한민국헌정회 정관
제17조(연로회원지원금) ②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 제2조의2에 따른 연로회원지원금의 지급금액은 예산에서 정한 바에 따른다.

연로회원에 대한 지원금 지급규정
제3조(지원금 지급액) ①연로회원지원금은 월 120만원으로 한다.


국회의원 연금의 문제점


1.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헌법에 의해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여야 한다. 국회의원 연금은 국회의원들만의 이익을 우선한 것이다. 국가재정을 희생하며 얻어내는 그들만의 특혜는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것도 아니고, 양심에 따른 결과도 아니다. 국가이익과 무관한 소수의 이기심과 비양심에 기인한 국회의원 연금법은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2. 민의에 반한다.

국회의원은 민의를 대변하여야 한다. 국회의원 연금이 민의를 대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에 철저히 반하는 제도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과연 어떤 직업군이 한 차례, 하루라도 직무를 수행한 것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죽을 때까지 매월 120만원씩이나 되는 연금을 수령할 수 있을까? 국회의원 연금은 상식과 정도를 벗어난 특혜이다. 소수 특정 집단의 이익에 해당 집단 외의 모든 사람들의 노력으로 얻어진 자원이 소모된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그들은 국민의 정서에 부합되는 입법을 하고 국가이익에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3. 특정 사례를 근거로 삼는다.

국회의원 연금에 찬성하는 관계자들이 자주 내세우는 근거가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는 전직 국회의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특정한 사례 때문에 모든 국회의원이 수혜를 입고, 노후를 보장받는다는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단지 국회의원이었다는 이유로 안전한 노후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대부분의 국민들도 자신이 속한 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국부를 창출하고 국가발전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기여를 한다. 국회의원 출신이라는 이유가 그들을 뽑아주고 그들의 활동비를 지급해주는 국민보다 더 큰 혜택과, 국민에게 보장되지 못한 수입을 평생 보장해주는 합당한 이유가 되는지 의문이다. 국회의원은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이며, 그들의 소득은 국민의 평균소득보다 월등하게 많다. 특정 사례로 전체의 사익을 도모하고 국회의원의 노후문제를 국민들의 돈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의 근원이 몰염치하다.


4. 혈세를 낭비한다.

국회의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매월 120만원씩 지급하는 연금 자체가 세금의 낭비인데, 누적되는 수혜자와 평균수명의 증가를 고려해 볼 때 향후 훨씬 더 많은 국민의 세금이 그들의 연금으로 소모될 것은 자명하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자신이 기여한 납입금을 기반으로 연금을 수령한다. 그러나 국회의원 연금은 타인이 납부한 세금을 기반으로 연금을 수령한다.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평생 먹여 살리는 것이 제대로 된 민주국가의 법인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5. 올바른 입법의 유인을 약화시킨다.

만약 국회의원들이 안전한 노후를 보장받고 싶다면, 전국민이 수혜자가 되는 사회안전망 구축과 사회투자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것이 그들과 그들을 대리인으로 세운 국민들을 위한 공정하고 합당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만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 그들만을 위한 재정지출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과연 국민들의 필요를 위한 공정한 제도가 탄생할 수 있는지, 진정 국민들을 위한 국가서비스 제공에 대한 유인이 발생하는지 의문이 든다. 국회의원들이야말로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미래를 염려하고, 현실의 문제를 체험하고, 이에 따라 올바른 법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올바른 법은 국회의원 연금법 같은 게 아니다.


6. 중복수혜를 받는다.

다른 국민과 같이 국회의원도 국민연금의 수혜자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그에 더해서 타인의 수입으로 국회의원 연금을 추가로 받는다. 단지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기여하지 않은 예산으로 중복적인 연금혜택을 받는 것이다. 그들이 안정적인 연금을 받고 싶다면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좋은 국민연금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7. 대리인문제(agency problem)의 전형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대리인이다. 국민과 국회의원 사이에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암묵적 계약이 존재하는 것이다. 대리인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만, 위임자의 이익과 상충하는 일을 하는 것은 계약을 위반한 행위이다. 국회의원 연금법의 통과는 국민이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이용한 대리인문제이며, 질 나쁜 도덕적 해이라 할 수 있다. 혈세낭비로 인한 국민 이익의 침해, 심리적 박탈감, 분노, 불공정한 사회현상의 방치 등의 문제를 대리인이 유발한 것이다. 국민이 좋은 법을 만들라고 위임한 국회의원이 자신들에게는 좋지만 국민에게는 안 좋은 법을 만든 것이다.


8. 더 불행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국회의원 연금법은 그들만의 특권의식이 있기에 만들어진 법이다. 양심도 없고, 자기희생도 없는 정치인들이 만들어내는 국가의 미래가 얼마나 불투명하고 불공정할지는 명약관화하다. 국회의원 연금법을 용인한다면 그만큼 불공정해도 국민이 용납하는 수준 낮은 사회가 되어 버린다. 향후 이와 유사한 불공정한 제도가 만들어져도 이미 넓어진 관용의 잣대로 방치하게 된다. 국민들은 그만큼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이러한 폐단은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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