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023

표절, 위증과 싸운 소송

나는 어느 지자체(관련 기관이나 당사자 비방 목적의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을 숨김)에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일을 돕기 위해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일이 있었다.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실무자와 산하 공공기관 연구진들에게 내가 아는 지식을 알려주고, 법인이 만든 자료도 제공해주었다.

이후 보고서가 나올 때쯤에 공공기관 책임연구원에게 나도 보고서를 볼 수 있는지 물었으나 “대외비라 외부에 공유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더 이상 자료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 지자체는 해당 보고서를 토대로 수년간 정책을 추진하고 예산을 집행하였다. 나는 어느 행사 자리에서 그 정책이 잘 추진된 것을 축하해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대외비라고 했던 보고서는 해당 공공기관과 3인 연구원의 명의로 일반에 공개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보고서 분량의 약 60%가 우리 회사에서 작성한 글이고, 설계 방법론(법원 판결문에서도 우리 회사의 지식재산으로 명시)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은 우리의 자료가 출처표기도 없이 사용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나에게 대외비라 속이고 표절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겨온 것이었다.

표절도 문제거니와 연구보고서의 대부분이 우리 회사의 글이라면 그 보고서는 사실상 우리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설상가상 공공기관 책임연구원은 내가 만든 자료를 사용하여 국내 학술지에 논문도 발표하고, 심지어 유튜브에 동영상까지 올렸다. 재표절되어 그들이 저자인 것처럼 확산된 자료도 많아 지식재산 침해 피해가 엄청나게 누적되고 있었다.


나는 바로 문제 제기를 하였고, 책임연구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어이 없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책임연구원: “저는 대표님 자료 받은 적 없는 것 같은데요.”
나: “보고서 내용 대부분이 저희 글인데 무슨 소리인가요? 제가 이메일로 자료 드렸고 수신자에 박사님이 있습니다.”
책임연구원: “이메일 받았지만 이메일을 안 열어봤을 수도 있죠.”
나: “그 이메일 확인하신 후 제게 답장까지 하셨는데요.”

내가 쓴 글이 그대로 보고서에 들어가 있음에도 내 글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게 끝까지 기만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 회사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민사소송을 걸었다. 나는 차분하고 꼼꼼한 좋은 변호사를 만나 재판기간 내내 함께 소송문서를 작성하였다. 참고로 저작권 침해는 형사처벌 대상이기 때문에 민·형사 소송이 모두 가능하며, 저작권 형사사건은 법원이 아닌 경찰이 담당하기 때문에 추후 상황을 보고 진행할 생각이었다.

소송이 진행되자, 나에게 명백한 증거가 있음을 확인한 상대측은 입을 맞추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가공하기 시작하였다. 회사 대표인 내가 연구보고서에 나와 회사의 이름을 등재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도 안되는 주장에 대한 우리의 반박과 증거가 담긴 준비서면만 해도 수백 페이지가 넘는다.

그들은 이러한 주장을 하면서 자신의 주변인들을 모아 거짓으로 진술서를 작성하고, 증인출석을 통해 아무렇지도 않게 위증까지 하였다. 심지어 출석한 증인이 특정 회의 때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주장하였는데 회의결과를 보니 그날 회의에 참석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 사건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한 가지의 거짓도 없이 사실과 증거로 대응하였고, 상대방은 거짓과 위증, 말바꿈, 요구자료 미제출 등으로 일관하였다. 거짓말은 만들기 쉽지만 거짓말이 나올 때마다 증거를 찾아 반박하는 일은 상당히 화나고 소모적인 일이었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우리 회사가 피해를 입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와중에 합의라도 하게 되면 그들은 향후 더 많은 범법행위를 하고 우리 회사에 더 큰 피해를 줄 것이 확실해 보였다. 나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끝까지 가서 완전히 이기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소송 중에 누군가 내게 공공기관을 상대로 싸우면 앞으로 그 지자체와 일 못하지 않겠냐는 말을 하였는데 그게 두려운 일도 아닐뿐더러 돈 몇 푼 벌겠다고 비양심적인 행위에 비위를 맞추고 싶지 않았다.

상대측은 불러들일 수 있는 주변인이 많았지만 나는 자문만 해주던 입장에서 해당 사건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 난처했는데, 마침 자문회의에 참석했고, 어느쪽과도 사업적 이해관계가 없던 민간 연구기관 박사님께서 내 상황을 듣고 기꺼이 증인으로 참석해 주셨다.

“나는 대표님이 그러한 말을 한 것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출처표기가 안되었지만, 만약) 출처표기가 되었다고 해도 보고서의 상당 부분이 타인의 글이라면 그것은 정상적인 연구기관의 보고서가 아닙니다.”


2022년 6월, 1심 판결이 나왔고, 당연한 결과이지만 우리 회사가 승소하였다. 법원은 공공기관이 우리의 저작인격권 및 저작재산권을 모두 침해하였음을 인정하였다. 공공기관은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했고, 그 보고서를 복제하거나 배포할 수 없으며, 공공기관 홈페이지에 14일 간 팝업 화면으로 저작권 침해 사실을 공표하는 등 여러 조치들을 해야만 했다.

판결 후 상대측이 항소장을 제출하여, 나는 반성 없는 이들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형사소송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피고는 이길 방법이 없어 보였는지 항소를 취하하여 7월에 판결이 확정되었다.

판결이 나고 수차례 언론에 보도가 되자 그제야 연구 책임자가 아닌 공공기관의 다른 관계자들이 내게 전화해서 표절한 게 맞다고 말하며 사과를 하였다. 그러나 이후 그 공공기관은 책임연구원에게 별 영향도 없는 경징계를 주며 사건을 마무리하였다.

이 사건은 세금을 받아 일하는 공공기관이 자신을 도와준 민간기업을 속여 표절 보고서를 만들고, 지자체는 이를 토대로 정책을 추진하고, 예산을 집행하고, 자신의 치적으로 홍보해온 사건이다. 세금으로 일하는 그 공공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과 싸웠다. 그리고 우리가 이긴들 그동안의 피해는 복구되지 않는다.

그들은 앞으로 이러한 일이 재발하고 아무리 언론에 보도가 된들 경징계 정도로 수습할 수 있다는 신호를 다른 연구자들에게 주었다.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면 이같은 무감각한 비윤리의 용인이 발생하고, 앞으로도 더욱 헐거워진 기준으로 사안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이 사건이 종료되고 바로 몇 달 후, 다른 지자체에서 동일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리의 지식재산으로 보고서를 발간하였고, 출처표기는 전혀 없었으며, 역시 저자는 다른 사람들로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능력과 양심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에 한탄을 하였고, 막 소송을 마치자마자 유사한 표절사건이 다시 발생하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지자체에 전화해서 심각한 저작권 침해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개한 보고서를 바로 내려 달라고 요청하였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잘 모르는 일이라고 변명하면서, 만약 문제가 생기면 앞으로 자신들이 그 사업을 못 하게 되니 우리 회사도 손해가 아니냐는 뉘앙스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범법행위까지 하면서 정책을 추진할 생각이라면 그냥 안 하는 것이 맞다”고 대답하였다.

내가 법적인 조치를 하겠다고 하자 얼마 후에 담당자가 나에게 전화를 하여 바로 사과를 하였다. 보고서는 내렸고, 표절한 게 맞다고 인정했으며, 합의를 요청하였다. 그나마 이전과 달리 바로 인정하고 사과를 하여 변호사를 통해 합의하게 되었다. 합의를 통해 인쇄·배포된 보고서의 폐기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았다.

뭔가 마무리된 것 같지만 착잡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매우 많은 종류의 표절을 당해왔는데 사소한 것들은 그냥 넘어간 경우가 많았다. 개중 심각한 것은 내 블로그 글을 통째로 자신의 글처럼 연구보고서에 싣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연구기관은 보고서의 상당 부분을 내 글로 채운 뒤 맨 뒤 참고문헌에 인용도 안 한 수많은 문헌들을 열거하고 그 사이에만 출처를 표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시금 그런 경우를 보면 확실하게 조치할 생각이다.


표절하는 사람의 의도는 명확하다. 부족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타인의 지식과 시간을 훔쳐 자기 것으로 만들고, 이를 자신의 치적으로 만들고, 결과적으로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표절은 지식재산을 훔치는 절도일 뿐 아니라 연구비의 부당수령이고, 저자를 속이는 사기이며, 결과적으로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는 범죄행위이다.

남의 글을 사용하려면 정확히 출처를 밝혀 인용하면 될 일이다. 인용 분량이 많거나 비공개 자료를 쓴다면 원저자에게 허락을 받던지 연구진 참여를 부탁하면 된다. 자격이 없는 이들이 실적을 만들고, 명예도 얻고, 연구비도 취하고 싶은 욕심에 타인의 것을 훔치고 문제가 되면 거짓으로 빠져나가려 하는 파렴치함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남의 지식을 훔치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매년 노벨상 타령을 하는 모습을 보면 갑갑해질 때가 있다. 남의 지식을 존중할 줄 아는 사회일수록 새로운 지식의 창조가 독려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마땅한 자격을 갖춘 이들의 노력과 재능이 존중받지 못하고 양심 없는 이들의 도둑질이 보상받는, 몰염치가 공의를 지배하는 나라가 지식으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재판 끝 무렵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했던 진술서의 일부를 발췌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
“원고 입장에서는 이 소송을 제기한 순간 바로 잠재적 고객을 잃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하게 된 이유는 일차적으로 피고에 의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표절에 의한 회사의 피해를 줄이고, 나아가 지식재산의 침해가 예사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서 올바르지 않은 것을 바로잡아야 성실하게 노력하는 회사들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
“원고는 이 사건으로 인해 피고에게 도움을 주고도 피해를 입은 반면, 피고는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하여 실적을 만들고, 오랫동안 자신의 저작물로 대외에 알리고, 원고의 저작물을 반복 표절하여 이익을 취하였습니다.”
……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큰 공공기관이 자신의 실적을 위해 지식이 생존 기반의 전부인 민간기업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알아야 하고, 이러한 잘못들을 용인하여 관행으로 만드는 일이 없어야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진실과 거짓을 명백히 밝혀내는 판결을 선고해 주시기를 요청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