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B에 대한 오해들

 

최근 SIB의 유용성에 대해 동의하고 긍정적인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SIB에 대한 오해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는 그동안 필자가 토론문, 블로그 등에 작성했던 내용을 편집·보완하여 SIB에 대한 여러 오해들을 언급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오해 1 : 정부의 비용부담이 증가한다

SIB를 활용하면 정부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 인센티브, 평가비 등을 지급하기 때문에 결국 정부 비용이 증가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정부가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정부가 수행하는 공공사업은 100% 성과가 보장되지 않으며, 그간 정부는 성과가 없는 사업에도 예산을 집행해 왔다. SIB는 성과 달성 정도가 미흡할 경우 정부가 예산지출을 대폭 줄일 수 있어 예산을 절감하게 된다.

② SIB는 총 사업비보다 절감되는 사회비용이 큰 경우에만 타당성을 인정받고 추진하게 된다. 그리고 절감된 사회비용 중 일부로 민간 참여기관에게 보상하도록 설계된다. 따라서 인센티브와 평가비 등을 지급하더라도 정부는 잔여 사회적 편익을 공공의 이익으로 남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업이 더욱 성공할수록 절감되는 사회비용과 잔여 사회편익은 더욱 커지기 때문에 정부나 투자자 모두에게 더 좋은 일이 된다.

③ 실질적인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집중하게 되면 투입예산 대비 성과가 향상된다. 즉, 같은 비용을 들이더라도 그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으며, 이는 예산이 효율적으로 사용된다는 의미이다.

이 외에 SIB를 하기 위해 기존 사업보다 복잡한 기획과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자원의 소모가 발생하여 비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기획에 소요되는 비용이 너무나 커서 예방되는 사회비용보다 크다면 모를까 그것이 아니라면 더 큰 가치 창출이 기대됨에도 부가적인 수고 때문에 하지 말자고 이야기 하는 것은 과장된 핑계에 불과하다. 당장 수고스럽고 돈이 들어가니 학교에 가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잠재적인 이익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투자로 이해한다면 간단히 넘어설 수 있는 단순한 장애물에 불과하다.

 

오해 2 : 평가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먼저 용어부터 설명하면 SIB에서의 평가는 지표에 대한 ‘측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사회적 가치를 평가 또는 정량화하는 작업은 사업 기획 당시 이루어지며, 이는 평가기관이 아닌 SIB 사업 기획자의 역할이다. 반면 평가기관은 제시된 지표로 공정하게 성과를 측정하는 역할을 한다.

기존에 정부가 재정지원을 해주던 사업에서는 사실상 정산과 감사가 곧 평가지표나 마찬가지였다. 이를 통해 정부가 민간단체들을 평가해 왔으며, 예산을 주거나 받는 입장에서 결과가 아닌 돈을 쓰는 과정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해관계자들은 영수증 처리와 문서 만드는 일에 자원이 집중되어 행정을 위한 행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원의 활용이 그 본질보다는 형식과 수단에 치우쳤던 것이다.

반면 SIB는 평가를 통해 사업의 본질인 공익적 목적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SIB의 평가지표는 공익적인 목표와 결부되고, 성과기준은 이 목표를 달성하도록 제시된다. 그리고 정부는 이 목표 달성 정도에 따라 약속대로 성과를 구매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형식과 수단보다 사업의 본질인 사회적 성과 달성에 자원을 쏟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평가가 있기에 성과를 올바로 확인하고, 이에 따라 보상도 가능해진다.

SIB의 평가는 실패를 찾아내고 책임을 지우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객관적인 측정으로 성과를 외부에 증명하고, 측정결과를 토대로 참여기관들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담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본질에 집중한 자원 사용을 통해 실제로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도록 만든다.

 

오해 3 : 확실히 검증된 사업만 해야 한다

SIB에 대한 일부 주장 중 SIB는 이미 해결책이 확실하게 검증된 사업에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있다. 이는 결과가 예측되는 사업만 해야 한다는 주장과도 같다. 물론 결과가 예측되는 사업이라도 정부 예산이 부족하여 실행할 수 없다면, SIB를 통해 실행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검증된 사업이 바람직하고 가급적 이러한 사업만 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확실히) 검증된 사업은 되도록 정부 예산으로 수행하면 되며, 굳이 SIB를 도입하여 이해관계만 복잡하게 만들고 정부가 투자자에게 (확실한) 인센티브까지 지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예산만 투입되면 결과가 뻔한 사업은 SIB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SIB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거나, 새로운 대상에 사업을 하거나, 같은 주제더라도 보다 효율적으로 또는 효과적으로 성과를 달성하려고 하는 등 사업 결과에 어느 정도 불확정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이용하는 것이 적합하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 투자자는 위험을 부담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정부가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업을 할 때 SIB의 참여자들은 혁신적인 방법을 고민하게 되고, 보다 효과적인 성과 도출의 길을 찾아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오해 4 : 선의 없는 투자자가 이익을 볼 수 있다

다소 선동적인 주장이다. 투자자가 사업이 성공했을 경우에만 받는 위험에 대한 보상은 부당하고, 사업이 실패했을 때 지게 되는 재정적 손실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재정적 위험을 부담하면 그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SIB가 성공한 시점에 이미 정부와 국민은 이익을 본 상태이다. 하물며 재정을 투입하고 위험을 진 투자자는 이익을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은 SIB를 준조세의 방편으로 여기고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선의 없는 투자자라고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2014년 해외에서 진행된 투자자 설문에 의하면 SIB에 투자하는 가장 큰 동기로 ‘사회적 임팩트’를 첫 순위로 꼽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사업규모, 혁신모델, 예방조치, 기대수익, 민관협력이 나온다. 여기서 기대수익은 다섯 번째 순위에 불과하다. 투자자가 SIB에 투자하는 것도 어느 정도의 선의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선의가 증명되지 않는다고 무엇이 문제가 될까? 사업의 목적과 내용만 올바르다면 투자자의 선의 여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시 질문을 해보자. 사람들은 선의로 세금을 내는가? 선의로 걷힌 세금만 숭고한 공공사업에 지출되는가? 불법적인 돈이 아닌데도 왜 선의의 여부로 돈에 꼬리표를 다는가? 애초에 돈은 가치중립적이고 색깔이 없다. 돈의 쓰임 자체가 돈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합법적인 돈에 색깔을 입히고자 한다면 영리기업에게는 세금도 내지 말고, 기부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오해 5 : 투자자 인센티브 금액이 부적절하다

여기에는 사람에 따라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이 나오는데 인센티브가 크다는 측과 작다는 측이 있다. 각자의 주관에 따라 의견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SIB의 투자자 인센티브는 근거 없이 임의대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로 설계된 SIB라면 다음의 요소들을 모두 반영해서 성과기준과 인센티브를 설정하게 되는데 그것은 사회비용 절감효과, 사업 난이도, 투자 유치 가능성, 성과보상자의 재정적 여력 등이다.

일단 투자자 인센티브는 최대한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SIB 투자를 시혜적 기부의 대체수단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세계 최초의 모델인 영국 피터버러시 SIB는 최대 인센티브가 연 13%나 되었고, 미국의 첫 모델인 뉴욕시 SIB는 투자금의 75%까지 원금보장이 되었음에도, 최대 인센티브는 원금 총액 기준으로 연 10.4%나 되었다. 투자금의 25%만 위험에 노출되고 4년 간 분할 투자한 것까지 고려하면, 실질 인센티브는 연 40%를 초과할 정도였다. 호주는 투자원금을 100% 보장해 주는 다소 이상한 사업을 시도했는데, 이 경우에도 최대 인센티브가 연 10%나 되었다. 손실 가능성이 없는데도 연 10%의 수익을 주는 것은 너무하다 생각했는지, 이후 이와 같은 모델은 시도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호주의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다른 SIB는 최대 연 30%를 지급하도록 만들었다.

한마디로 위험을 지는 투자자에 대한 보상을 무조건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정합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성과보상이 이루어지더라도 정부 입장에서도 남기는 편익이 크기 때문에 제대로 된 SIB라면 투자자에 대한 보상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불합리하지 않다.

반대로 투자자 인센티브를 최대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사회비용 절감효과를 초과하거나 공공이 남기는 것 없이 투자자에게 지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 유타주 SIB의 경우 잘못된 성과측정 방식과 기준 설계로 투자자에게 과도한 인센티브가 지급되도록 만들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투자 리스크를 제거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야말로 위험 없이 수익도 얻고 사람들의 칭찬도 듣고 싶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투자상품을 요구하는 것과도 같다. 이와 같다면 굳이 임팩트투자 또는 사회적 투자라고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떤 영리목적의 투자자라도 이러한 조건이면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이를 제공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를 임팩트투자의 당연한 전제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해 6 : 복지를 축소시킨다

민간의 투자를 통해 SIB 사업을 수행하면,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복지의 영역이 축소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먼저 SIB는 복지제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사회적 과제를 개선하고 증명하는 수단이며, 굳이 복지라는 영역에 한정시킬 필요 없이 다양한 영역에 적용 가능하다.

그리고 SIB는 모든 사업을 대상으로 수행 가능하지 않다. 일단 SIB는 측정 가능한 객관적인 지표가 존재하는 사업만이 가능하다. 또한 사회비용 절감액이 충분히 커야 실행할 수 있다. 기본적인 복지와 관련된 사업도 SIB로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면 빈곤층에게 수급비, 치료비, 바우처 등을 지급하는 등 공여와 시혜가 필요한 영역은 SIB를 활용할 필요가 없다.

또한 SIB를 한다고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실패한 사업에 대한 재무적 위험과 책임만 회피할 뿐이지, 사업의 결정, 원금과 인센티브 지급의 보증, 운영기관의 선정, 평가의 객관성 보장, 성공 시 예산의 지출 등 제반 과정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주체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예산이 절감되면 더 많은 공공사업을 할 수도 있고, 성공한 사업으로 인해 사회문제를 개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시혜적인 복지가 필요한 곳에는 곧바로 정부 예산을 지출하면 된다. 반면에 SIB를 통해 자원이 순환되는 복지가 가능하다면 이것도 훌륭한 선택지가 된다. 결국 시혜적 복지와 순환적 복지의 합산은 증가하게 되며, 이는 불완전한 복지를 보완하게 된다.

실 사례로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추진한 서울시 제1호 SIB 사업의 경우를 보자. 애초에 SIB가 아니었다면 공동생활가정에 거주하는 경계선지능 아동들에 대한 정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SIB라는 방법론이 있기 때문에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던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3년 간 서비스가 제공되는 기회가 생겼다. 이것이 복지의 축소는 아닐 것이다.

 

오해 7 : SIB 대신 일반적인 정부지출 사업으로 하면 된다

꽤나 퇴영적인 주장으로 보인다. 정부의 예산이 남아돌거나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무한정 걷어낼 수 있다면 이 말이 옳다. 그리고 SIB의 장점들이 모두 필요 없다고 생각해도 이 말이 옳다. 사업이 실패해도 재정이 남아돈다면 온갖 방법들을 실험하고 반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성과를 측정하지 않으면 실패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납세자나 정부에게는 예산제약선이 존재하며, 이는 우리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SIB가 도입됨으로써 그간 외면 받았던 사회문제를 전에는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할 기회를 얻는다면 이는 사회적인 유익이다. SIB이기 때문에 정부는 실패에 대한 위험부담 없이 사업을 결정하고, 투자자는 새로운 사회공헌과 투자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SIB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성과를 측정하고, 사업의 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것이다. SIB이기 때문에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새로운 연구가 이루어지고, 민·관협치도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공사업은 민간의 개입 없이 무조건 정부가 단독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먼저 증세나 정부재정의 문제부터 해결하고 와야 한다. 이는 결국 SIB의 문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주제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담세와 정부지출의 수준이 어떻든 SIB가 지닌 장점이 발휘될 수 있다면 이는 그 자체로 유용한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SIB를 적용함으로써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적극 활용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원문출처 : http://panimpact.kr/sibmag-sib-story-201908
(이 포스팅은 필자가 SIB 매거진 2019년 7·8월호에 게재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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