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사회적 금융 – 월가의 기계들

2008년 발생한 세계금융위기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관조적이고 거시적인 원인분석에 대한 글은 이미 많은 수가 나와 있어 쉽게 접할 수 있다. 주택가격의 하락을 가정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발행하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subprime mortgage loan), 가공의 자원을 창출해내는 파생금융상품이 만들어낸 계측 불가능한 리스크와 연쇄적으로 노정되는 손실 등을 언급하며, 유래 없는 유동성완화 정책만이 세계경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미 금융당국의 메시지를 던지곤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려 하는 것은 세계금융위기가 아니다. 나는 지금부터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그간 논의되지 않았던 불공정한 첨단거래기법을 언급하려고 한다. 월가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금융’이 아닌 ‘탐욕’이며, 이를 근간으로 창조된 기술이 바로 그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월가에서 금융은 탐욕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기 때문에 서브프라임사태와 같은 금융위기는 그러한 정신을 지닌 금융기술자들이 존재하는 한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시장을 폭락시킨 슈퍼컴퓨터

2010년 5월 6일, 5분만에 미국의 다우존스지수가 약 600포인트(시가기준 약 1000포인트 = 9.2%)가 폭락하였다가, 20분에 거쳐 다시 급등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상식을 벗어난 움직임으로 시장은 큰 혼란을 겪고, 많은 피해자들이 생겼으며, 이후 금융당국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거론되었지만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미국의 투자회사와 헤지펀드들이 애용하고 있는 HFT(High Frequency Trading)가 거론되었다.

HFT란 컴퓨터를 통해 자동매매하는 시스템트레이딩의 한 범주로서 슈퍼컴퓨터를 이용하여 초단타매매를 통해 단기수익을 누적해 나가는 거래기법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초단타매매 중 상당수는 1초 이내에 진입과 청산이 이루어지는 것들로서 증권의 정상적 매매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HFT는 컴퓨터가 미리 프로그래밍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매매를 하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되지 않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고 다른 HFT 시스템들도 유사한 신호를 포착했을 때, 상식적으로 사람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반응을 일으킬 수가 있다. 현재 미국 주식시장 거래량의 70% 이상이 HFT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상황에서 2010년 5월의 폭락은 나비효과처럼 어떠한 특정 상황에서 HFT 시스템의 매도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비정상적으로 투매가 증폭된 경우였던 것이다. HFT는 누구도 언제 터질지 예측할 수 없는 타이머 없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렇다면 HFT가 사회를 위해 환원하는 이익은 과연 무엇일까? HFT는 초단타거래에 기초한 머니게임으로서, 사실상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일부는 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하여 사람들의 거래를 촉진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HFT로 인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시장의 폭락과 혼란, 무의미한 거래량의 증가와 신호의 교란, 그리고 다음에 언급할 플래시트레이딩과 같은 불공정한 거래기법 등을 고려할 때 이는 순기능 보다는 분명 사회에 주는 역기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악한 첨단기술

선행매매(front running)는 다른 사람의 거래의향을 사전에 알고, 중개인이나 전문거래자가 미리 앞서 매수/매도하여 수익을 취하는 것으로서 불법적인 거래 방법이다.

플래시트레이딩(flash trading)이란 HFT를 이용하여 투자회사가 일반 거래자의 주문을 사전에 포착한 뒤 마이크로초(microsecond) 단위로 고객의 주문이 체결되기 전에 자신들의 주문을 앞서 체결하여 이익을 취하는 방법이다. 한마디로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선행매매인 것이다.

타인의 주문명령을 훔쳐보고 플래시트레이딩을 하는 주체는 주로 대형 금융회사와 헤지펀드들이며, 주문내역을 볼 수 있는 일종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서버를 증권거래소 내부에 설치하여 남들보다 더 빠른 주문이 가능한 이점을 이용한다. 플래시트레이딩을 하는 회사에게 유료로 서버 공간을 대여해주는 미국의 증권거래소나 이를 이용하는 회사들이나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미국에서 증권브로커가 직접 행하는 선행매매는 불법이지만,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플래시트레이딩은 불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플래시트레이딩은 유리한 정보와 도구를 가진 대형 금융회사가 독점하고 있는 방법이며,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도둑질일 뿐이다.

골드만삭스(Goldman-Sachs)도 플래시트레이딩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회사 중 하나이다. 미국 투자은행시대의 대표주자로서 세계금융위기 당시 미정부의 구제금융을 통해 회생한 기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이 그 후에도 플래시트레이딩과 같은 준(準)사기적 기법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구제였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미국 국민들은 자신들의 세금으로 금융위기의 주범 중 하나였던 골드만삭스를 살려내었지만, 결국은 그 회사의 주주와 임직원을 배불려놓기만 한 것이다.

2010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Renaissance Technologies)의 제임스 사이먼스(James H. Simons) 전 사장은 약 3조 원의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기도 한 금융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펀드는 하락장에서도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여 많은 자금이 그의 회사로 유입되었으며, 수학자 출신답게 그가 말하는 경영철학은 순수한 퀀트(quant; 수학과 계량기술을 이용한 거래자)에 기반한 증권매매였다. 주식에 전혀 지식이 없던 수학자나 물리학자를 채용하여 주식의 계량적 움직임만을 분석하여 거래 시스템을 만들어내면서 그 전략을 철저히 비밀로 삼아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르네상스 테크놀로지가 다른 사람들의 실시간 제한주문장부(limit order books)를 구매하여 초단타 거래에 활용한 사실과 HFT의 개척자라는 사실은 어떻게 그 회사가 그렇게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는지 알려주는 힌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열매가 제임스 사이먼스라는 한 개인의 천문학적인 연봉으로 귀결된 것이라 생각하면 그 회사의 놀라운 신화는 씁쓸한 웃음만 짓게 만든다.

한 때 플래시트레이딩에 대한 비난여론이 생기자 미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를 공식적으로 규제하려고 했으나, 금융회사들의 로비 때문인지 이후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자발적으로 이를 중단한 회사(예: NASDAQ, BATS 같은 ECNs)도 있으나, 여전히 선행매매를 하면서도 유동성을 공급하니까 유익하다고 주장하는 금융회사들이 있다. 아마도 그들은 또 다른 위기가 닥쳐오기 전까지 사람들의 시선 밖에서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는 조용한 절도를 계속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래자

미국의 주식이나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는 대부분 ECN(Electronic Communication Network)이라는 전자 증권거래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 거래소를 통해 일원화된 주문경로를 이용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는 여러 ECN 회사들이 있어 증권거래를 체결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한국의 경우 거래되는 증권 물량은 한국거래소 시스템에 반영되어 다른 증권사를 이용하더라도 주식 가격대별로 보이는 물량이 같은 데에 반해, 미국은 한 주식의 같은 가격대라도 각 ECN별로 물량이 다르며, 거래자가 원하는 ECN을 직접 지정하여 해당 ECN을 이용하는 상대와 거래를 체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일종의 사설증권거래시스템인 것인데, 증권시장도 자율과 경쟁에 맡긴 것이 신자유주의 철학이 담겨 있는 듯하다.

이러한 ECN의 종류는 군소업체까지 합치면 수십 개가 넘는다. 사실 ECN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불공정한 거래환경을 만드는 변종 ECN들이다.

대표적으로 ‘Dark ECN’이라고 불리는 보이지 않는 ECN들이 있다. 말 그대로 물량이 있어도 일반인들은 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금융회사들이 이것을 증권사간 거래가 아니라 일반인이 거래하는 장내에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금융회사가 주식을 처분하려고 하거나 우월한 정보력을 이용하여 시장에 진입할 때, 시장에 나타나는 물량은 거래자들에게 보내는 하나의 신호가 되는데 이 Dark ECN들은 일반인들이 거래상대의 물량을 알 수 없게 만들고, 신호를 감지할 수 없게 만든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근래에 미국에서는 1센트 단위로 움직이는 주식의 가격체계에 1센트 미만의 단위를 만들어 놓아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볼 수도, 이용할 수도 없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는 이러한 틈새가격을 이용하여 거래되는 스프레드 중간에 주문을 놓고 거래를 쉽게 체결시켜 이익을 취해간다. 예전에는 1달러도 안되는 저가주식에 한하여 모든 참여자가 1센트 미만의 가격단위를 보면서 거래할 수 있게 만들었으나, 이제는 모든 주식에 이러한 가상의 가격을 만들어 전문 금융회사만 그것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가격단위가 많아짐으로써 더 많은 거래량이 발생하게 되고, 수수료를 받는 ECN 회사와 세금을 받는 금융당국은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로 인한 피해는 대부분 단타거래자들에게만 갈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특정한 위치에 있는 거래자만 이용할 수 있는 환경, 시장에 보내는 신호의 차단, 중간가격을 통한 주문의 독점체결, 그리고 이러한 환경을 이용한 HFT 시스템의 적용 등은 모든 일반인들에게 불리한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전문 금융회사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단타거래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인 단타거래자들은 피해를 입어도 된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의 거래환경을 유리하게 만들수록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보며, 그 손해가 그러한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는 일반인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전염성 탐욕

여기서 언급한 괴상한 시스템과 금융기술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과연 이러한 것들은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 모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해야 할 금융거래의 장에 아무렇지도 않게 공정성을 파괴하는 이러한 기법이 개발될 필요가 있었는가? 일부 금융인과 기술자들이 얻어가는 수익을 위해 유·무형의 사회적 비용과 리스크를 방관하는 것인가? 이는 월가와 미 당국이 답을 주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더 큰 문제는 월가에 이러한 기술이 탄생하고 생존할 수 있는 그 정신적 배경에 있다. 이미 월스트리트는 도박사들의 무의미한 게임에 기업과 경제가 판돈으로 걸려 세계를 뒤흔드는 거대한 라스베이거스가 되어 버렸다. 자금을 중개하고 필요한 곳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일, 실물에 투자하여 상업과 경제를 발전시키는 일, 투명하고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 등이 상업금융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그러한 본질에서 벗어난 상품과 기술을 개발하고 막대한 수익을 취해간다는 것은 탐욕의 정신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최고의 직장에서 최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세계 금융시장을 주무르는 월가 금융인들의 영혼이 탐욕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것은 언제든 더욱 사악한 금융상품과 기술이 등장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서브프라임을 만들어 내고, 또 다른 금융위기를 불러오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과 같이 작은 불공정과 반사회적 기술을 방치해 두면 그보다 더 불공정한 기술과 상품의 탄생을 초래하고, 첨단으로 미화된 탐욕은 계속 자라나 결국에는 금융의 커다란 파국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월가의 종말인 것이다.

2002년 미 금융시장을 흔들었던 엔론(Enron) 사태 때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언급한 ‘전염성 탐욕(infectious greed)’은 여전히 기복을 가진 채 월가를 전염시키고 있다. 현재 그 병원균은 스톡옵션과 분식회계의 모습에서 첨단의 상품과 기술로 외형을 바꾸어 활동하고 있다. 반사회적 금융기술의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여 잠복기의 전염상태에서 금융시장을 치료한다면 건전한 금융이 실물 경제와 시민의 생활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전염성 탐욕은 잠복기를 지나 언제라도 또 다시 금융과 세계경제를 쓰러뜨려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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