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016

사람에 관한 세 가지 생각

 

학창시절에 했던 세 가지 흥미로운 생각이 있다.

 

1. 영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인간의 의식(意識)을 존재하게 만드는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몸을 화학적으로 분해하면 수분,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등 수많은 물질이 나올 것이다. 만약 기술의 발달로 이러한 물질들을 재료로 삼아 인간의 몸과 완전히 일치하게 조합한다고 하면, 사람처럼 생긴 고깃덩어리는 만들 수 있어도 그것이 생명을 갖도록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기계는 똑같은 물질로 조립하면 동일하게 작동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지만, 사람은 완전히 동일한 조립체를 만들어도 의식을 가진 생명이 되지는 않는다. 생명의 탄생은 물질적 조합의 완성도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뇌는 그 수만큼의 자아가 아닌 단 하나의 나, 단 하나의 생명을 인식할 뿐이다. 존재를 인지하게 되는 것, 즉 의식 있는 생명을 갖기 위해서는 물질의 구성인 육체를 갖는 것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하다.

나는 영혼이라는 비물질이 물질인 육체에 생명과 의식을 준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뇌의 역할 중 하나가 영혼과 육체를 매개하는 것이라는 상상도 하였다. 태아의 잉태는 형이상적 영혼이 인간의 육체라는 형이하적 물질에 결합하는 순간이라 여겼다. 단, 영혼이라는 생명의 정수가 육체에 묶여있는 동안은 상당 부분 육체의 기능적 지배를 받는다고도 생각하였다.

 

2. 인류

인식하는 영혼을 가진 생명이 자기 자신이다.

나의 존재가 영혼에 있다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삶에 의미가 있다. 애초에 나는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었고, 다른 모든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었다. 내 영혼은 인류 중 한 사람의 몸속에 들어갔고, 나라는 인간은 인류라는 유기체의 한 세포인 것이다.

나는 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던(John Donne)이 명상록에 쓴 글에 공감하였다.

“전 인류는 한 저자가 쓴 한 권의 작품이다. 한 사람이 죽으면 책에서 한 장(章)이 뜯겨지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언어로 바뀌어진다. 모든 장은 그렇게 바뀌게 된다…… 누구든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 대양의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유실되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지고, 곶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 당신 친구들의 영지나 당신 자신의 영지가 그리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를 위하여 종(弔鐘)이 울리는지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3. 소명

각 사람에게 세상의 크기는 각자의 머리가 인지하는 한계점까지이다. 그 인지의 영역, 즉 자기가 알고, 느끼고, 상상하는 만큼이 그 사람에게는 세상의 전부이고 자기의 우주가 된다.

틀림없이 사라질 내 육체의 생존만을 위해 사는 것은 허무하다. 나의 우주도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더욱 크게 보인다. 보다 큰 범주 안에 있는 나를 의식하면 인류의 한 존재로서 내가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인류의 우주, 영혼의 우주는 사라지지 않는다. 때로 신앙이 있는 자들은 영원한 절대자의 우주를 보려고 한다.

위대한 사람은 자신이 인류의 일부임을 의식하지만, 편협한 사람은 자기밖에 볼 수 없어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한다. 내 육체의 생존과 안위만이 삶의 목표가 된다면 태어난 이유를 찾기가 힘들어진다. 관점을 바꾸어 세상을 바라보면 자신의 꿈이 바뀌고 이유는 점차 뚜렷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