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을 조롱하는 세상

 

분명 세상은 학교나 책으로부터 배운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옳다고 여겨진 것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면할 때 조롱과 무시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탐욕과 무책임, 이기적인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공익의 희생, 작은 권력이라도 있으면 남용되는 권한과 그런 이들의 무례함, 그리고 그것들이 잘못이라고 인식되지 못하는 모습은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암묵적으로 사회와 문화 속에 누적되는 폐단은 법적 처벌을 받는 폭력이나 살인 이상의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과장된 것일까?

자신을 포장하거나 남에게 보이기 위한 명분 주장은 자연스럽지만, 현실 속에서 정의와 정직의 실천을 요구하면 바보 취급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손해 보지 않고 냉정하게 처신하는 것,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 결국은 남을 지배하며 사는 것이 성공한 인생의 모형처럼 여겨지면서, 정직한 것과 옳은 것에 대한 자명한 명분은 현실의 분위기 속에 희석되어 버린 것 같다. 어쩌면 교육이 남을 이기기 위한 도구로 변질되고, 물신주의가 미화되고 있는 세상에서 옳은 것을 분별하고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공익과 정의를 희생하는 사적인 이익추구의 문제를 지적할 때 “고지식하다”, “다들 그렇게 한다” 따위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서자인 주인공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처럼 지금 세상 사람들은 진짜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지 못하는 도덕과 정의의 서자들과 같아 보인다. 이기적인 의도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냥 악한 것일 뿐이다.

정의, 양심, 공정의 미덕과 가치들이 현실 속에서 열광적으로 수용되고 작동하는 세상을 원하는 것을 고루한 생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 국한된 자아와 이기심의 범위를 넓혀서 우리사회, 우리나라를 생각한다면, 현실에서 자기합리화를 통해 불필요한 것으로 외면하던 가치들이 사회와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제가 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는 타인을 이겨야만 인정받는 잘못된 교육, 부도덕을 미화시키는 경쟁, 출세지상주의, 편협한 집단화와 몰염치한 이기주의, 지역주의, 불공정한 법치, 총체적 도덕성의 부재 등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잘못된 윤리적·문화적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세속적 성공과 정치적 분열에 소모하고 있는 많은 지식과 에너지 중 작은 부분만 이러한 의식개혁에 투자하여도 세상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명분 없는 목적과 부정으로 훼손되었던 국민 역량의 총화가 온전히 활용된다면 분명 우리나라는 더욱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정의의 적자(嫡子)들이 인정받고, 영향력을 확산하는 우리나라가 되는 것이 희망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