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왜 과로하는가? – 근로시간에 대한 1인 토론

 

“한국인의 근로시간 OECD 회원국 중 최장,
그러나 노동생산성은 최하위(34개국 중 28위)”
(OECD ‘Economic Policy Reform: Going for Growth 2012’ 보고서)


 

정(正; thesis) : 한국인의 과로는 숙명

일을 하면 돈을 번다는 것은 일을 했을 때 무엇이든 유·무형의 부가가치를 창출해내었다는 의미이다. 건물을 짓거나, 작물을 수확하거나, 가르치거나, 남에게 즐거움을 주거나 무엇이든 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돈이라는 계량적 단위로 환산하여 그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것이다.

부가가치 창출의 용이한 방법, 즉 부의 원천이 부존하는 환경이라면 그렇지 못한 곳에 있는 사람보다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부가가치 창출이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경쟁자들만큼의 생활수준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다른 원천을 찾아내야만 한다. 즉, 한 국가가 지닌 부의 원천이 삶의 방법과 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천연자원은 대표적인 부의 원천이다. 땅을 파내어 보석이나 원유, 산업원료 등을 취득할 수 있고, 이렇게 다른 형태의 돈을 채취하는 작업을 통해 바로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 물론 일부 빈곤한 자원부국처럼 부존자원은 많지만 효과적인 정부와 경제시스템이 없다면 국민의 생활은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북미와 북유럽의 선진국들처럼 풍부한 자원과 효과적인 정부가 존재하면 국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언어나 자연환경도 부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단지 영어가 모국어라는 이유로 유학생이 몰려들어 교육산업이 발전할 수 있고,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관광산업이 발전한 국가도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천연자원이 없고,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주어지지도 않았다. 좁은 국토에 산지가 많은 지형, 여름이면 수해를 겪고, 겨울이면 동토로 변하는 혹독한 자연환경, 그리고 인구밀도가 높은 자원빈국이다.

우리의 자원은 우리자신, 곧 사람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경쟁할 수밖에 없다. 자원부국이 땅을 파내어 석유와 천연가스를 캐내고, 영어권 국가에서 모국어로 한 시간 떠들면서 수업료를 받을 때, 우리는 그 만큼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온종일 일하고 머리를 싸매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단순한 노동뿐 아니라 지식과 기술도 우리의 자원이라고 반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식을 쌓는 것도,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사람의 노력과 경쟁, 노동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결국 우리의 과잉노동과 경쟁은 부의 원천이 없는 한국인의 숙명이다. 선진국과 똑같이 일해서 가난하게 살든가, 아니면 그들보다 더 많이 일을 해서 비슷하게, 또는 더 잘 살든가, 이 두 가지 중 우리는 후자를 선택하였다.

 

반(反; antithesis) : 과로의 원인은 잘못된 근로문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고, 더 많은 일을 하며, 성실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받기 위해 대부분이 자신의 실제 모습을 은연중에 과대포장한다. 특히 일반사무직이나 서비스업처럼 개인의 업무성과가 계량적으로 정확하게 제시되지 않는 직종의 사람들일 수록 그렇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의 시그널링(signaling)을 시도한다.

예를 들면 불필요한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하면서 자신의 일이 어려운 것이고, 업무량도 많고, 자신은 성실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자신의 업무에 전혀 불필요한 외국어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따면서 무엇인가 뛰어난 능력을 습득했다는 신호를 보낸다. 혼자만 그런 척하기가 어려우면 자신의 팀원에게도 야근과 주말근무를 강요하며 자신이 중요한 팀의 책임자라는 신호를 보낸다. 특히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중년의 남자들은 의도적인 늦은 귀가와 시그널링이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이러한 일들을 하며, 부하직원들에게도 이를 강요한다.

이러한 시그널링의 문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발견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야근이 효율적 근무보다 인정 받고, 사내·외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을의 초과근무를 강요하는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조직문화가 만연해 있는 현실로 인해 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진짜 일이 많아 야근을 하고 과로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에 사회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보통은 그렇게 밥 먹듯이 야근하는 사람 옆에 새로운 인력을 보강해 주어도 전과 다름없이 야근을 한다.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인자(factor) 중 하나인 것이다.

결국 비민주적인 업무환경, 과로가 성실과 미덕으로 여겨지는 문화, 이로 인한 불필요한 노동의 증가와 시그널링의 만연이 우리의 근로시간을 늘리는 대표적인 주범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의 과잉노동은 숙명이 아니며, 우리 자신과 잘못된 근로문화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합(合; synthesis) – 통제가능 요소 통제하기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것에는 두 가지 함의가 있다.

먼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같은 노동력을 투입해도 자원이 풍부한 OECD 국가들보다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더 낮을 수밖에 없다. (input에 비해 output이 작다.)

두 번째는, 불필요한 업무수행으로 인해 투입되는 노동시간에 비해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낮은, 즉 효율이 떨어지는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output에 비해 input이 크다.)

결국 앞에서 언급한 ‘정’도 맞고, ‘반’도 맞는 것이다. 부의 원천의 부족으로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면서, 동시에 비민주적이고 잘못된 조직문화로 인해 불필요하게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천연자원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근로문화를 개선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려있으며, 사람들의 인식과 환경을 바꿈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다. 따라서 불필요한 야근을 강요하거나 야근으로 인정받으려는 자원소모자에게 주는 인센티브를 축소하고, 효율과 창의를 중시하는 조직문화가 자리 잡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하면 덤으로 비효율적이고 정치적인 근로자가 유능하고 비정치적인 근로자의 설 자리를 잃게 만드는 조직 내의 역선택 문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 전반적으로 자원을 너무나 불필요한 곳에 낭비하고 있다. 사회·경제 시스템을 결정하는 정치와 기업의 비리, 지역과 이념의 대립, 도덕적 해이, 경쟁을 위한 경쟁, 둔감한 윤리의식 등은 사회의 효율적 작동을 크게 방해한다. 왜냐하면 쓰지 말아야 할 곳에 에너지를 쏟아 저량적인 국가역량을 무의미하게 소모하고, 올바른 방법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낭비되는 에너지가 보다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일에 투입된다면 보다 효과적인 부의 창출 체계를 구축해낼 수 있을 것이다. 정직, 협력, 통합, 도덕 등은 무형의 요소이지만 유형의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하는가를 결정짓는다.

‘합’의 결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부의 원천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더 뛰어난 자원을 창조해내야 한다. 열심히 지식을 쌓고, 기술을 개발하고, 성실하게 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것에 많은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합리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고, 사회분열을 해소하고, 실천적인 윤리교육을 강화하는 등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를 개선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지금보다 더 적게 일해도 더 효과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 한국인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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