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의 추억

 

고시원에 들어가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오랜 기간 고시원에서 살았다. 가족들은 호주로 이민을 갔지만, 나는 호주보다 한국이 좋았다. 고집이 세서 부모님의 만류에도 결국 한국에서 혼자 사는 길을 택했다. 문제는 당시 여러 사정으로 내게 생활비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월세 방을 얻어 혼자 자취를 시작했는데 책상도 없고, 세탁기도 없고, 조리기구도 없었다. 방에는 낡은 전기밥솥과 소형 냉장고 하나가 달랑 있었다. 공부는 방바닥에 엎드려 했는데 팔이 저리고 목이 아팠다. 손빨래를 하자니 시간도 들고 힘도 들었다. 반찬이 없어 맨밥을 먹거나, 새우깡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였다. “책상이랑 세탁기가 있으면 살만할 텐데… 그리고 누가 음식 좀 해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간절할 때 고시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고시원에 가면 책상이 있고, 공용 세탁기가 있고, 식권을 구입하면 밥과 반찬을 먹을 수 있었다.

고시원 원장이 나의 사정을 알고 특별히 방값을 깎아주었다. “한 달에 9만원만 내. 원래 10만원인데 자네가 아직 어리고 혼자 산다니 내가 특별히 9만원에 해줄게.” 1만원 차이가 그렇게 커 보일 수 없었다. 인정 있는 분을 만나 다행이었다. 나는 자취방을 나와 자산이었던 전기밥솥과 소형 냉장고를 처분하고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첫 고시원

나의 첫 고시원 방은 긴 복도 끝 T자로 갈라지는 지점에 위치하였는데, 크기는 1평이 안되었다. 정확히는 0‚9평. 방에 창은 없고, 방 천장에 등도 없었다. 책상에 고정된 등만 있었는데 책상 주변은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았다. 누우면 발을 뻗을 수 없어 잘 때는 의자를 책상 위에 올리고 발을 책상 아래로 넣어야 했다. 벽은 얇은 합판으로 되어 있어 옆방의 책장 넘기는 소리까지 들렸다. 공간을 아끼기 위해 베개도 없이 바닥에 머리를 대고 잤는데, 이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어 베개가 없어도 잘 잔다.

그래도 고시원이 자취했던 월세 방보다 더 내 방 같았다. 깜깜하지만 책상이 있어 좋았고, 손빨래를 하던 나는 공용 통돌이 세탁기가 그렇게 기특할 수 없었다. 하루 세 끼는 다 챙겨먹지 못해도 식권만 있으면 밥과 반찬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고시원이 너무 좋았다.

지내다보니 불편한 것은 있었다. 너무 작은 방에서 살다보니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그 당시 누운 채 기지개를 켜보는 것이 작은 소원 중 하나였다. 누워기지개는 길바닥이나 교실 바닥에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고 일어나 시원하게 팔다리를 한 번 뻗어보고 싶었다.

여름에 몸살을 앓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몸이 아파도 혼자이니 약을 사다주는 사람도 없고, 열이 나고 오한으로 힘들어도 나갈 기운이 없어 그대로 누워있었다. 공간을 아끼기 위해 담요도 얇은 것 하나만 갖다 놓아 그렇게 추울 수 없었다. 문제는 고시원 냉방이 복도에 있는 공용 에어컨을 틀어놓는 방식이라 방으로 냉기가 쏟아져 들어오고, 나 하나 때문에 에어컨을 끌 수도 없었다. 당시 약도 못 먹고 며칠을 괴로워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고시원 총무와 잡담을 했다. “그래도 저는 원장님 덕에 9만원에 저렴하게 들어왔어요. 고맙더라고요.” 그러나 총무 왈, “그 방 원래 9만 원짜리야. 잘 안 나가는 방이라 원장이 너 속였나보다.” 원래 9만 원이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했어도 난 어차피 들어왔을 텐데 굳이 속여서 인심 쓰는 척 하다니 조금 실망스러웠다.

 

지하 고시원

이후 전학도 가고,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았다. 그 중 고등학교 2학년 때 잠시 살았던 고시원이 있다. 서울대입구역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건물 한 채를 다 쓰는 고시원인데 진짜 고시생들이 대부분인 곳이었다. 나는 고시원에서 가장 저렴한 방을 찾았고 건물 지하에 있는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1‚2평 정도에 월 10만원.

이 방의 첫 느낌은 덥고 공기가 탁하다는 것이었다. 방문 옆 얼굴 높이에 작은 창문이 있는데 열어도 그냥 지하 통로일 뿐이었다. 왜 있는지 모를 창문이었다. 벽에 작은 농이 있어 열어보았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안에 수납공간은 없고 수도관 같은 파이프만 있었는데 수십 마리 바퀴벌레들이 새까맣게 모여 있다가 흩어지는 것이었다. 어찌나 많은지 잡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벌레들이 파이프 사이로, 농과 벽 사이로, 장판 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살충제를 사와서 구석구석 뿌리긴 했는데 뭔가 찜찜했다. 그래도 이 방 천장에는 등이 있고, 의자를 책상 위에 올리지 않아도 잘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누워기지개는 불가능했다.

얼마 후 밤에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내 배를 바늘로 찌르는 느낌이 나 벌떡 일어났다. 꽤나 아팠다. 범인은 바퀴벌레. 그 때 알아낸 것은 내가 잠자는 동안 바퀴벌레들이 내 주변을, 또는 몸 위를 기어 다녔고, 그 중 하나가 내 배를 물었던 것이다. 다음 날 바로 거치식 바퀴벌레 약을 잔뜩 사왔다. 방이 작아 두어개만 붙이면 될 것 같지만, 나를 먹을 것으로 생각한 놈들이 괘씸하여 여기저기 몽땅 붙여놓았다. 복부에 물린 자리는 며칠 부어올랐지만, 바퀴벌레 약은 효과가 있었다.

이 고시원에 사는 동안 겪은 또 다른 사건이 기억난다. 식권을 한 번에 수십장씩 구입하면 할인이 되어, 어느 날 나는 큰 맘 먹고 30장을 구입해서 지갑에 넣었다. 나에게는 30끼의 식량이 지갑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후 지갑을 잃어버렸고, 한 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굶는 게 일상이었지만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었다. 난 그 뒤로 바지 뒷주머니에 지갑을 넣지 않는다.

나는 혼자 사는 동안 학교에 도시락을 가져가지 못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평일 점심만큼은 어찌 해결할 수 있었다. 반 친구들이 점심때가 되면 자기 밥을 조금씩 덜어서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자기 어머니께 얘기해서 내 밥을 따로 가지고 온 친구도 있었는데 여전히 고마운 마음 간직하고 있다.

 

시골 고시원

서울을 떠나 잠시 시골에 있는 고시원에도 살아보았다. 고시원에 비치된 고시잡지에 나온 광고를 보고 이사를 갔다. 의정부역에 내려 잘 오지도 않는 버스를 탄 뒤, 다시 걸어가야 나오는 고시원이었다. 그런 곳에 고시원이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자동차도 드물게 오고 주변에 인가도 많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도 새로 지은 건물이라 방이 깨끗했고, 조용히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 맘에 들었다. 무엇보다 책상 정면에 밖이 보이는 창문이 있었다. “드디어 창문 있는 고시원에 사는구나!”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될 줄은 처음에 몰랐다.

고시원 주변은 아담한 산등성이와 밭뿐이었다. 조금 걸어가면 언덕배기에 오래된 공동묘지도 있고 길에서 죽은 뱀도 발견되는 그런 곳이었다. 공기도 좋고 조용했는데 문제는 밤에 일어났다.

밤이 되면 고시원 주변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는데 고시원 방만 불이 켜져 있어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온갖 벌레들이 창문 가득 붙었다. 모기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난 시골 나방이 그렇게 큰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창문 슬라이드 틈이나 방문이 열릴 때 복도에서 들어오는데, 거대한 나방이 작은 방안을 퍼덕거리며 날아다닐 때면 소름이 돋았다. 종종 나방과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 눈을 마주쳤다는 표현이 이상할지 모르지만 나방이 너무 커서 나방 눈에 빛이 반사되면 나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번은 참새만한 나방이 벽에 붙어 통통한 더듬이를 떨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 잡아야 하는데 휴지로 잡을까? 녀석을 터트릴 때 그 느낌을 어찌 감당하나? 살충제를 뿌릴까? 도망가다가 내 얼굴에 붙으면? 생각만 해도 징그럽네.” 결국 나는 두꺼운 종이를 고깔 모양으로 만들어 벽에 붙은 놈을 가두어버린 뒤에 고깔의 뾰족한 부분을 살짝 열어 살충제를 잔뜩 뿌렸다. 이 녀석이 종이 안에서 난리를 친다. 튀어나올 것 같아 테이프로 고깔을 벽에 고정시켰다. 고깔 안에서 최후를 맞은 나방을 창밖에 던지려니 밤에 창문을 열면 더 많은 벌레들이 들이닥치기 때문에 아침까지 그대로 두었다. 자고 일어나 고깔을 건드렸는데, ‘퍼덕 퍼덕’ 놀랍게도 멀쩡히 살아있었다. 살충제로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 다시 깨어나 있었다. 나는 아주 큰 나방은 살충제로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국 녀석은 생존했고 창 밖에 날려졌다.

 

지금의 나

세월이 지나 지금 나는 오피스텔에 산다. 혼자 살기 때문에 이곳이 여러모로 편하다. 책상도 있고, 침대도 있고, 세탁기도 있으며, 경치가 보이는 커다란 창문도 있다. 다행히 바퀴벌레나 왕나방은 없다. 고시원이 고교시절 나의 집이었다면 지금은 더 좋은 고시원 같은 이곳이 나의 집이다.

이제 아무 때나 누워기지개를 할 수 있는 것도 커다란 혜택이다. “학창시절 잘 먹고, 잘 자고, 맘 편히 지냈다면 공부도 더 잘하고, 키도 한 뼘은 더 컸을 텐데…” 가끔 이러한 생각도 들지만 잘 배웠고, 충분히 컸으며, 소중한 경험을 했다. 고단해도 힘을 다해 질주한 소년시절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그 당시 내가 수첩에 적어놓았던 글이 있다.

“제발, 내가 꿈꾸는 미래가 젊은 날의 혈기로 인해 만들어진 허상이 아니기를… 훗날 후회하지 않는 삶은 지금의 내게 달려있다.”

여전히 꿈꾸는 미래가 있다면 소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시간이 지나 현재의 나를 회상하면 좋은 추억이 되어 있을까? 후회하지 않는 삶은 지금의 내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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