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이야기, 그리고 나의 나라


사나이의 귀

내 양쪽 귀에는 문제가 있다. 날카로운 소리가 쉼 없이 귓속을 울린다. 더욱 괴로운 것은 귀를 막아도 들리기 때문에 이 소리를 듣지 않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가지 않아도 되는 군대를 갔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다. 내 딴에는 자원입대의 명분을 지키기 위해 병과를 택할 때도 일부러 전투병과를 1순위로 지원하여 포병장교가 되었다.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사서 고생하는 선택들이었다.

땅콩만한 탄두가 나가는 소총을 사격해도 순간 귀가 멍해진다. 하물며 총알에 비할 바 없이 큰 포탄은 사격 시 귀가 멍해지는 정도가 아니다. 처음 자주포 사격을 참관할 때 발사 순간 거대한 음압으로 주변이 진공상태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관이었다. 이후 실사격 훈련을 할 때 나는 순간적으로 귀를 막았다. 그런데 이를 본 교관이 나에게 소리쳤다. “귀 막지 마! 사나이가 이런 걸로 귀를 막고 그래!”

미군은 귀마개를 준다는데 배달의 용사는 귀를 막으면 안 되었다. 포병에는 여군이 들어오지 못했는데 주된 이유는 포사격 시 음압의 충격으로 유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기가 죽을 수도 있는 소음이지만 사나이의 귀는 이를 견뎌내야만 했다.

어쨌든 이 일을 계기로 귀를 보호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

내 귀가 제대로 망가진 사건은 자대 부임 후에 일어났다. 2003년, 관측장교였던 소위 시절, 어느 날 대대에 훈련용 탄환이 많이 남았다며 본부포대장 지휘 하에 장시간 사격통제를 하게 되었다. 당일 사로 통제자는 나 혼자 뿐이었다. 사나이에게 귀마개가 주어질 리는 없었고, 자주포에 비하면 장난감 같은 소총 사격일 뿐이었다. 그러나 포사격으로 약해져 있던 귀가 소총사격 소음에 오랜 시간 노출되니 결국 귀가 고장나버렸다. 그날 귀가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버린 것이다.

사격통제 후 며칠 바깥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고, ‘삐-’ 하는 이명만이 매우 크게 들렸다. 이후 조금씩 청력이 돌아왔으나 약해진 상태였고, 이명은 멈추지 않았다. 이 소리는 밤낮으로 나를 괴롭혔다. 청신경 손상으로 인한 감각신경성 이명. 사람마다 소리가 다른데 내 이명은 8000 헤르츠 전후의 고주파음이다. 수신전파 없는 TV 채널을 켤 때 나는 삐- 소리와 비슷한데 보다 더 높고 날카롭다.

손상된 신경으로부터 직접 뇌로 전달되는 소리이기 때문에 귀를 막아도 들리며, 강제로 소리를 들어야 하니 소리로 고문을 당하는 것과도 같았다. 나는 불면에 시달렸고, 군 생활 내내 자기 전 수면유도제를 먹거나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아야만 했다. 이명 치료를 위해 군병원, 민간병원 모두 가 보았고 다양한 치료법을 적용해 보았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청신경은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렵다고 한다.

당시 내 소식을 들어 안타깝게 여겼던 육군본부 인사처장께서 공무상 상해 처리가 가능한지 알아봐 주셨는데 담당기관으로부터 눈에 보이는 외상이 없으면 공상 인정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놀라운 행정편의였다. 나는 청신경 손상과 이명이라는 훈장을 달고 2005년, 3년 3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중위로 만기 전역하였다.

 
개인의 문제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이명에 시달리고 있다. 평생 죽는 순간까지 들어야 하는 소리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 소리에 익숙해져서 수면제 없이도 잔다는 것이다. 강제로 들어야 하는 소리에 적응을 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다. 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명 소리가 커지고, 한 번 크게 들리기 시작하면 청신경이 머릿속에 대고 울어대는 날카로운 소리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어 괴로움을 겪는다. 사회초년 시절에는 불면 때문에 병가를 쓴 적도 있다. 게다가 큰 소음에 노출되면 증상이 악화되기 때문에 영화관에 갈 때 귀마개를 해야 하며 시끄러운 공연장은 갈 생각도 안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귀마개를 하면 들어야 할 소리도 같이 못 듣는다.) 때때로 불면이 찾아오며, 생활도 불편하다.

분명한 신체적 손상이고, 삶의 질 저하이며, 이로 인해 본 피해도 크다. 그러나 내 나라에서는 인정해주지 않는다. 국가가 볼 때는 내가 스스로 견디고 해결해야 하는 “개인”의 문제인 것이다.

 
일방향 애정

묘하게도 나는 호주 정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다. 한국에 있음에도 영주권을 받았고, 덤으로 뉴질랜드 영주권까지 받았다. 호주에서는 학업, 의료, 생활의 혜택 등을 보았다. 당시 시민권으로 전환도 가능하여 대학원 등록 시 학비지원에 대한 더 많은 혜택을 받도록 호주 시민이 되라는 권유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나중에 영주권을 버리고 군대에 갈 생각만을 하고 있어 호주시민이 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조국에 애정이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사회생활도 가급적 공공에 이익이 되는 일을 찾아서 하려고 했다. 내가 부족한 것은 변명하지 않겠지만, 국가에 대한 애정만큼은 진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 나라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다친 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위정자, 공적 권한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사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국민의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시키는 것을 보았고, 본인도 많이 겪어보았다. 국민을 위해 일하도록 공인의 자리를 받은 자들이 바로 그 자리를 보전하거나 단지 편하게 일하기 위해 선의를 지닌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한다.

나라를 위해 일한 개인에게 무책임한 국가는 그 개인의 어려움만을 묵살하는 것이 아니다. 잠재적인 모든 헌신에 요구하는 희생이며, 이는 사람들의 좋은 생각을 역진하게 만드는 무가치한 신호만을 보낸다. 작은 부작용들이 누적되면 중병이 되는 것처럼, 외면 받은 개인들의 희생이 누적되면 국가를 퇴보시키는 병이 된다.

내가 우리나라에 쏟은 관심은 일방향 애정일 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나라에 도움이 되고 싶지만, 나를 지켜주는 나라는 없어 보여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