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믿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으로 사물과 현상을 대부분 설명할 수 있고, 과학이 더욱 발전하면 이내 모든 것을 증명해낼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 아닌 분야는 인간의 사변적 논리로 이치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도 한다. 우리는 과학과 이성이 세상을 지배하는 듯한 새로운 인간종교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나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문제들, 앞으로도 증명해내지 못할 문제들은 많이 있다. 사실상 이것이 인간의 본유적 한계일 수도 있다. 그 중 일부 독특하고 흥미로운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1. 타인의 존재 : 모든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느끼고 경험한다. 타인의 존재는 나의 몸을 통해서 감각할 뿐이지 실제로 타인을 경험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타인이 실제 사람인지, ‘나’라는 세상에 유일한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나와 닮은 모습으로 작동하는 물체인지 증명할 방법이 없다. 타인이 아무리 자신도 영혼이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해도 인식의 주체인 나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타인의 인간으로서의 실체는 증명 불가능하다.

2. 세계의 존재 : 이 세상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지, 아니면 우리 모두 잠든 채, 또는 두뇌만 존재한 채 실제로 세상이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증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세계는 몸이 아니라 뇌가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존하는 세계 없이 뇌만 조작된다면 무한히 넓은 물리적 공간이 우리 인식 속에 창조되고 상호작용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데카르트의 인식론인데, 영화 ‘매트릭스’도 이와 유사한 전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3. 과거의 존재 : 어제만해도 이 세계는 없었으나 오늘 우리가 세상에 나왔고, 모든 이의 기억 속에 가상의 과거가 입력되고 자연과 사물에도 기억에 상응하는 가상적인 흔적이 남겨진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실제 과거로부터 연속적으로 존재했는지 증명할 수 없다.
 

​물론 본인이 위 세 가지 존재를 의심하며 산다는 말이 아니다. 아마 위의 존재 중 하나라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유대관계를 맺기도 힘들뿐더러 삶의 의미마저 상실할지도 모른다. 비록 증명할 수 없지만 나는 분명히 타인의 존재, 세계의 존재, 과거의 존재를 믿으며 살고 있다.

사실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 위의 실재를 믿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선험적인 믿음이다. 한 마디로 우리 인간은 증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믿음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요건은 생에 대한 입장권과도 같다.

결국 인간은 이성보다 더 중요한 믿음의 토대 위에 실존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존재와 세계, 삶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믿음과, 때로는 그 이상의 믿음 위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