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B에 대한 기억

 

새로운 발견

내가 처음 SIB라는 것을 알게 된 때는 2011년도이다. 당시 ‘사회적금융’이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을 검색해가며 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국내 검색 사이트에서 나오는 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구글에 접속해 영문으로 검색을 시작하였고, 관련된 많은 자료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학습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심지어 아마존닷컴에서는 관련된 도서들도 검색이 되어 전자책으로 구입하였고, 책을 읽으면서 뒤쳐져 있기만 한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였다. 이러한 학습의 과정 속에서 2010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SIB를 알게 되었고,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라 여겼다.

그 때 한국은 보수와 진보, 여·야 간 정부지출에 대한 논쟁과 대립이 심화되어 가고 있었다. 보수 진영은 정부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는 입장에 근거하여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였고, 진보 진영은 정부가 일반적인 시혜의 원칙에 따라 예산을 더 많이 집행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쟁의 격랑 속에서 당시 서울시장은 시민투표를 추진하다가 자진사퇴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즈음 나는 SIB야말로 여·야,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수용할 수 있는 범사회적인 수단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SIB는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우면서 납세자의 세금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SIB는 복지 분야에만 쓰이는 것은 전혀 아니며, 다양한 공공사업에 활용되는 방법론이다. 단지 이러한 사회적 논쟁을 계기로 SIB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후 서울시에 SIB 정책을 제안하고 실제로 일이 성사되기까지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게 되었지만, SIB가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의 발견이 가지 않은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였다는 생각이 든다.

 

SIB의 생존

영국에서 첫 SIB 사업이 시작된 이후 한동안 해외에서도 이와 같이 복잡한 체계가 과연 확산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과 의심 가득한 목소리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또한 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예산제약선에 대한 고민 없이 정부지출의 확대만이 진리라 주장하던 사람들은 SIB를 시장주의자들의 불순한 시도로 곡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회의론자들과 극단론자들의 목소리를 덮은 것은 시장과 정부의 실패를 목도한 혁신가들의 발 빠른 행동이었다.

그들에 의해 SIB는 영국에 이어 미국, 호주는 물론 다른 유럽 국가들에도 전파되었고, 흥미로운 실험이 아닌 듯 커다란 규모로 과감하게 사회문제를 건드리기 시작하였다. 국민을 비롯하여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승자가 될 수 있는 이 시스템은 임팩트투자 및 성과의 측정, 민관협치 등의 세계적인 트랜드와 맞물려 빠르게 퍼져나갔다.

우리나라는 서구에 비해 늦기는 했지만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SIB를 도입하였다. 서울시가 조례를 제정한 때가 2014년, 첫 사업을 의결하고, 팬임팩트코리아와 운영협약을 체결한 것은 2015년이었다. 물론 설명하는 것처럼 순조롭게 진행된 것이 아니었지만, 맨바닥에서 힘들게 시작한 혁신의 시도는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SIB는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국제협력의 장에서도 SIB의 중요성이 언급되기도 한다. SIB는 예산을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으로서 임팩트투자의 매개체이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정착되어가고 있다. SIB가 실험으로 종료될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들이나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사람들의 희망대로 되기에는 너무나 유익한 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원문출처 : http://panimpact.kr/sibmag-sib-story-201902
(이 포스팅은 필자가 SIB 매거진 2019년 1·2월호에 게재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