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가 모두 동의하는 것


보수와 진보가 모두 동의하는 것

이번 이야기의 제목은 ‘보수와 진보가 모두 동의하는 것’인데, 실은 과거 포브스(Forbes)에 실린 기사 제목 ‘사회성과연계채권: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이 동의하는 것(Social Impact Bonds: Something Republicans And Democrats Agree On)’을 조금 바꾸어본 것이다.

이 제목대로 미국은 보수(공화당), 진보(민주당) 양당 의원들이 SIB 활성화를 위한 연방법을 공동발의했고, 오바마 행정부 때에 하원을, 트럼프 행정부 때에 상원을 통과하여 2018년에 법이 제정되었다. 그야말로 양당 의원들과 양 진영의 지도자들이 공동의 주제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SIB는 보수와 진보가 추구하는 바를 모두 달성할 수 있는 기발한 방법론이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금을 사용하는 정부지출의 적정성에 대한 논쟁과 다툼이 격렬하고 이로 인한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도 극화되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미래 세대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재정 효율과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곳에만 예산을 사용하자는 주장을 한다. 진보 진영에서는 가급적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수혜의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예산을 사용하자는 주장을 한다. 두 가지 주장을 다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SIB를 활용하면 성공한 사업에만 예산을 집행하고, 성공해서 예산을 집행하더라도 절감되는 사회비용이 더 크게 된다. 또한 절감한 예산으로 더 많은 공공사업을 할 수 있게 되고, 민간 투자자가 사업 위험을 감당하기에 정부는 더욱 혁신적인 사회문제 해결을 고민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보수나 진보 입장에서 불쾌한 부분은 발견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이 언론 기고와 인터뷰를 종종 했었는데, SIB는 정부예산과 관련한 어떠한 입장이든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의 SIB

다행히 우리나라도 국회를 통해 SIB를 위한 법안 발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관심과 시도는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국회 때 두 명의 의원이 SIB 활성화를 위한 기본법안 발의를 하였고, 또 다른 한 의원은 지방재정법과 자본시장법을 일부 개정하는 안을 발의하였다. 안타깝게도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만료되며 그 법안들은 폐기되었지만, 2020년 새로운 국회가 시작된 이후 벌써 몇몇 의원들이 SIB 활성화를 위한 법안을 발의하였다. 국민들의 눈에 싸움만 하는 국회 같지만, 이와 같이 혁신적인 법안이 발의되는 것을 보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SIB 법안을 발의한 당을 보면 우리나라의 보수 정치인들은 SIB에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2015년 보수당이자 당시 집권여당이 SIB 활성화를 위해 법을 만들겠다는 보도자료를 내었고, 심지어 2016년 총선 때는 총선공약집에 SIB를 공약으로 넣기까지 하였다. 당시 진보당(야당)에 속했던 서울시가 이미 SIB를 도입한 상황에서 여권까지 이를 도입하겠다고 나섰던 것이고, 나는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양당이 동의하고 협력할 수 있는 정책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대감을 가졌었다. 그러나 지난 수년 사이 정쟁과 여·야 갈등이 심화되면서 SIB를 통한 진영 간 협력 가능성이 옅어진 것 같아 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기고 말았다.

이번 국회에서는 의원들이 정치를 위한 정치로 국민을 갈라놓는 일만 하지 말고, 국가와 사회 전반을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 SIB는 특정한 입장을 가진 사람만이 좋아하는 수단이 아니라 범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미 다른 나라도 SIB 활성화 입법을 위해 의회와 대통령을 모두 아우르는 성숙한 공조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우리나라도 입법 과정에서 정치인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이 SIB의 취지와 이점을 올바로 이해하고 지지해준다면 그와 같이 못할 이유가 없다.


원문출처 : http://panimpact.kr/sibmag-sib-story-202009
(이 포스팅은 필자가 SIB 매거진 2020년 9·10월호에 게재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